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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한국 미술의 절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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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청담 노아빌딩에 마련된 `청유미감`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한국미술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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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창작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동양화가 박래현(1920~1976)은 1969년 49세에 서구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뉴욕 프랫 그래픽센터와 봅 블랙번 판화연구소에서 새로운 조형 작업을 실험했다. 서구 미술인 동판화에 한국적 소재를 긁고 부식시켰다. 맷방석, 부채, 하회탈, 불상, 보리 등을 기하학적으로 풀어내는 추상판화를 선보였다. 복잡하고 밀도 높은 선묘에 야성적인 생명력이 꿈틀거렸다. 지금 봐도 세련된 조형으로 판화 자체가 한국 작가 최초였다.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1913~1974)도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신안 바다와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담았다. 서양화 기법을 따르더라도 한국적 미감(美感 )으로 작가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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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테라코타 오월의 여왕


서울 청담동 노아빌딩에 있는 주영갤러리(지하 1층~지상1층), 호리아트스페이스(3층), 아이프(4층) 연합전시 '청유미감(淸遊美感)'은 박래현과 김환기, 한국 1세대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추상화 대가 이우환(82) 등이 서양 예술과 한국적 정서를 융합한 작품 80여점을 펼쳤다. 전시명에서 '청유'는 아담하고 깨끗하며 속되지 않은 놀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 즉 '미감'을 더해 일상에서의 행복한 감성적 유희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권진규는 한국 여인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을 흙으로 빚었다. 이번에 전시된 1969년 테라코타 작품 '오월의 여왕' 역시 꼿꼿한 여인의 자태에 강직한 여성 내면을 표출했다. 인물의 감수성까지 표현한 조각에 옻칠 기법을 더해 특유의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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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8-X-69 #124


이우환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1980년작 '선으로부터-80041', 1985년작 '동풍', 푸른색과 붉은색 점을 대각선상에 배치한 1999년 '조응' 등 다양한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대형 붓으로 힘차게 내려 그은 세 줄로 대형 화폭을 채운 '선으로부터-80041' 기세가 압도적이다. 굵은 빗줄기나 우렁찬 폭포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달 문을 여는 그림명상 전용공간인 아이프에 걸려 있다.

김환기의 1950년대 '새와 달'과 '달', 1969년 푸른 점화 '4-XI-69 #132', 1969년 오방색 추상화 '8-X-69 #124' 등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뉴욕 시절에 그린 오방색 추상화는 대담한 면분할 속에 별처럼 빛나는 점들이 나타난다. 이 점들로 화면을 꽉 채운 푸른 점화 '4-XI-69 #132'가 맞은편에 걸려 있다. 작품 밑그림인 드로잉 15점도 김환기의 예술 세계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더한다.

김환기가 술에 취해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한시를 쓴 서예 작품도 눈길을 끈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가 흰데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 수심도 깊구나(月白 雪白 天地白 山深 夜深 客愁深)'는 내용으로 예술가의 고독을 방랑자에 감정이입한 것 같다.

박래현 1966년 '작품14' 등 추상 작품 4점은 김기창 화백의 아내라는 그늘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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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작품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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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1980년작 선으로부터-80041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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