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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소설 전면에 나온 산업노동자'…황석영 "여전히 방치된 채 사고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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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철도원 삼대'로 5년 만에 돌아온 황석영

"죽을 때까지 쓰는 게 작가의 책무"

뉴스1

소설가 황석영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0.6.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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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소설가 황석영(77)이 지난 2015년 경장편 '해질 무렵'을 펴낸 이후 5년 만에 신작 장편 '철도원 삼대'(창비)로 돌아왔다. '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황석영은 이 책을 통해 산업노동자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다. 앞서 한국문학에서도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은 있었다.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석영 '객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황석영은 한국문학에서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고 지적한다.

황석영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신작 장편 '철도원 삼대' 출간간담회에서 "우리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산업노동자를 전면으로 다룬 장편이 한국문학에 빠져있다"며 "놀라운 점인데, 이걸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이진오의 모습은 우리가 언론 등을 통해 봐온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서울 강남역 철탑 위에서 1년여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내려온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의 모습은 이와 흡사하다.

황석영이 작품에서 산업노동자들을 다루게 된 데는 관련 소설이 한국문학에서 빠져있다는 점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조건에 대해 아쉬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휘청이게 한 IMF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을 이유로 비정규직이 늘고, 자본의 힘은 막강해졌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 자본이 국경을 넘어 빠져나가는 시대가 됐다.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하고 있고 한국이 세계경제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등 조건은 열악한 상태다. 황석영은 "(노동자들이) 사회 외곽에서 방치된 채로 사고를 당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최근 김훈 작가가 한 언론에 꺼낸 말을 언급했다. 황석영은 "우연히 신문을 봤는데, 자기가 보수라고 말한 김훈이 보수쪽에서 보더라도 (노동자들의 죽음이) 기본적인 휴머니티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더라"라며 "뭉클했고, 전체 사회가 좋은 일터,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이 소설이 자신의 유년기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1989년 방북했을 당시 겪은 경험에서 이 소설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풀어냈다.

"70세가 넘은 것 같은 평양 백화점 부지배인을 만났는데, 서울말을 쓰길래 고향을 물어봤더니 서울 영등포라고 했다. 나도 영등포가 고향인데, 당시 초등학교가 불에 탔고, 화장실에서 똥이 끓어 냄새가 1주일간 심하게 나 밥도 못 먹었던 얘기를 했더니 내 아버지 또래인 본인도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듣고, 내 유년시절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걸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황석영은 이날 소설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노벨문학상과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도 풀어냈다. 그는 "나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몇 번 거론되고 했지만, 별 관심이 없다"며 "다 낡은 이야기"라고 했다.

황석영은 "현대문학에서 늘 서구문학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도 이만큼 성장했는데 올림픽에서 메달 따오듯 노벨상을 받아야 하지 않나 말하지만 별 의미 없다 생각한다"며 "정 그렇다면 우리도 상을 하나 만들까 하는 생각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냉전 이후 사라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작가들이 모인 '알라'(AALA)에서 주는 로터스상을 2~3년 안에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분단체제가 흐트러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북미대화도 시작했고 나와야 할 화두는 다 나온 것으로도 큰 진전"이라며 "조만간 코로나 시국이 가시고 나면 다시 대화와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특히 황석영은 작가에게 따로 은퇴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며 "죽을 때까지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작가가 세상에 가지는 책무"라며 "기운이 남아있는 한, 마구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 작품으로는 현재 지내고 있는 곳(전북 익산)이 원불교가 발생한 장소라,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이 어릴 때 깨달아가는 이야기,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철학동화 같은 걸 쓰려 한다"고 했다.

한편 '철도원 삼대'는 초판 1만부가 다 나가 증쇄에 들어간 상황이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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