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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충무로에서] `좋은 국가채무론` 문제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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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등장한 뒤 여당까지 합세해 띄우고 있는 '좋은 국가채무론' 말이다. 기본 뼈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국가채무 총액(분자)/GDP(분모)'라는 방정식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과 여당의 문제풀이 방법은 국가채무 총액을 줄이지 않더라도 분모(分母)인 GDP가 늘어나면 국가채무 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이렇게 심플하게 풀어내다니.

다시 물음표가 떠오른다. 1차 방정식인 줄 알았더니 다차 방정식인 거다.

변수가 되는 분모 GDP는 알파벳 세 글자가 아니라 복잡한 함수다. GDP는 돈 퍼붓는 만큼 1대1로 비례해 늘지 않는다. 정부지출이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재정승수' 효과라 부른다. 분모인 GDP를 키우면 채무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은 돈 쓰는 족족 생산과 고용으로 흡수돼 '마법콩나무'처럼 GDP가 쑥쑥 자란다는 동화다.

재정승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물품 구매 등 투자·소비성 지출이 상대적으로 높다. 국민에게 현금을 직접 살포하는 이전 지출은 상대적으로 낮다. 문재인정부가 사용한 재정의 '가성비'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비실비실대던 고용지표가 말해준다. 지출 효과가 낮은 곳에 돈을 쓰다 보니 성장률은 내리막, 빚은 늘어가고 있는 거다.

여당의 국가채무론 문제풀이에서 말하지 않은 또 하나 변수는 유한한 재원이다. 올 들어 실시한 두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에선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 예산의 구조조정을 택했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는 이젠 한계다. 조만간 실시할 3차 추경에선 수십조 원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얼마나 더 필요할지 하느님도 모른다.

결국 증세뿐인데 입도 벙긋 안 한다. 어떻게 증세할지 답도 뻔하다. 여당에서 걸핏하면 건드리는 법인세는 잘못 건드렸다간 투자만 줄여 역효과다. 소득세도 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전 국민을 상대로 복지정책을 할 땐 누구나 10% 똑같이 부담하는 부가가치세가 그나마 낫다. 작년 소비세를 인상한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더 걷힌 세금은 복지비로만 쓰기로 했다.

꼭 이번에 결단코 세금을 올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말이라도 꺼내놔야 복지는 공짜가 아니란 걸 안다는 말이다.

[경제부 = 이지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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