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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지식인의 표상 - 에드워드 W. 사이드 [김정섭의 내 인생의 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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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망명과 지식인의 소명

경향신문

사회적 이슈를 대할 때 ‘이건 아닌데’ ‘내 생각은 다른데’ 하는 소수의견을 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주류 생각과 다른 비판적 견해는 어떻게 표출해야 할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나를 각성시키고 용기를 준 책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이다. 책에서 다룬 핵심 주제는 ‘지식인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사이드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권력이나 관습이 만들어낸 진부한 시각을 거부하고 폭로하는 사람을 말한다. “절반의 진실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어떤 강령이나 당파성에도 순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표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표상되지 않는 존재들을 대변하고 정의와 진리를 확산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소명임을 역설한다.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높은 학식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인물만이 아니다. 학자, 언론인, 정책조언가, 경영 컨설턴트 등 전문 직업인이 모두 지식인의 소명이라는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식인의 표상>을 읽고 난 후 나는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조직 내부의 정책 논의라는 좁은 공간을 넘어 대중에게 내 생각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이드가 말한 대로 “오랫동안 숙고하여 나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들”을 글로 써서 발표한 것이다. 문민통제에 대한 대안적 생각을 밝혔고, 북핵 위협에 대해 핵우산에만 매달리는 대신 재래식 억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한국전쟁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우리 군사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을 고찰하기도 했다.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 지배적 관념에 도전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배척과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를 잃고 싶지는 않다. 지식인의 소명에 부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특별히 유명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사이드의 격려를 믿기 때문이다.

김정섭 |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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