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처벌 등 법령 세분화 필요”
검찰 로고. [연합] |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성폭행·학교폭력 등 유명인의 사생활에 관한 폭로가 번지면서 관련 명예훼손 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 소송은 크게 피해자가 가해자나 제 3자의 댓글 등을 통한 2차 피해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쓰는 경우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피해자의 폭로에 대한 방어 무기로 활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최근 불거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에 대한 악성 댓글 역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3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 사건 관련 피의자 인원(경찰 송치 사건 포함)은 ▷2017년 1만1534명 ▷2018년 1만4661명 ▷2019년 1만6532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4254명)과 비교하면 지난해에는 무려 4배나 늘어난 것이다. 올해에도 4월까지 피의자 인원이 5361명에 달해, 연말까지 지난해 수치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피해자들은 가해자 또는 제3자의 댓글 등을 통한 2차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최근 체육계 첫 ‘미투’ 폭로자인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는 가해자로 지목한 대한체조협회의 전직 고위 간부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한 데 대해 허위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38명이 숨진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 참사의 사망자를 상대로 악성 댓글을 단 40대 남성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으며, 고(故) 백남기 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보수 단체 대표는 이달 7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도 피해자나 공익제보자의 폭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활용하고 있다. 가수 김건모(52) 씨는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상대 측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가 최근 취하했다. 학교폭력 의혹으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던 김유진(29) 프리랜서 PD는 해당 의혹 유포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유포자 측은 학교폭력이 모두 사실이라며 맞고소를 예고한 상태다.
가수 박경(28) 씨는 지난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제보 형태로 가수 6팀을 실명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 해당 가수들로부터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허위사실 명예훼손의 경우는 물론, 사실 적시 명예훼손 소송도 가능하다는 점이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학습효과에 따라 명예훼손 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활용이 보편화된 시대인만큼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일률적으로 다루지말고, 이를테면 내부인 토론을 위한 단톡방을 통한 공유는 허용하고 불특정인에게 온라인으로 유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는 등 법령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은미 국선 전담 변호사는 “인터넷 문화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표현 증가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들은 질과 양 측면에서 확연히 늘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진실한 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까지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이라는 위법성조각사유를 갖춘 언론의 발화도 주저시킨다는 문제가 있다”며 “다만 현재 명예훼손에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액이 많지 않으므로, 민사적 구제방법을 다듬어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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