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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코로나 이후 큰 정부의 시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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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적극적 재정·통화 정책 펼쳐… 신흥국 상당수 국가부도 직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는 연일 파격적인 대책을 쏟아냈다. 중앙은행은 국채를 넘어 손실 위험이 있는 회사채까지 매입하고 정부는 직접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줬다. 이 같은 조치로 선진국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으면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받고 있다.

반면 이미 막대한 달러 빚을 지고 있는 신흥국은 코로나19에 유가 급락까지 겹치면서 제대로 대응을 못 해 국가부도 가능성이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국면을 지나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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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러진 미국 정부의 개입

코로나19 위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3월 3일부터 5월 6일까지 4일에 한 번꼴로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한 달도 안 돼 주 정부가 발행하는 지방채를 매입하는 기구를 비롯해 9개의 대출기구 가동 계획을 공개했다. 금융위기 당시 약 1년에 걸쳐 6개의 대출기구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대응이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대책은 연준의 회사채 매입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업어음(CP)을 매입했지만, 연준이 회사채까지 매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신용도가 높은 CP와는 달리 회사채는 손실 위험도 컸다. 이에 연준은 별도의 기구를 통해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에 신용을 공급하면 형평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우회전략을 택한 셈이다. 미 재무부가 손실을 떠안기로 하면서 연준은 손실 위험 논란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연준은 또 한 번의 대책을 발표했다. 유통시장과 발행시장에서 회사채 매입 규모를 각각 늘리고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강등당한 이른바 ‘폴른앤젤(Fallen angel)’ 기업의 채권까지 매입하는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자칫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러올 수 있는 대책이었지만 시장은 빠르게 안정됐다. 투자등급은 물론, 하이일드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예상대로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간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재정지출도 역대급 규모로 진행됐다. 미국 정부는 3월 6일 1차 대책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경기부양법안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발표한 대책의 규모만 2조8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감세에 방점을 두었던 역대 경기 부양책과 달리 이번에는 지출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재정지출의 상당 부분을 가계소득 지원에 무게 중심을 뒀다. 연 소득이 7만5000달러 이하인 경우에는 1인당 1200달러씩 나눠주고 실업수당 시효도 26주에서 39주로 확대했다. 항공사와 화물운송 종사자의 고용 유지를 위해 급여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는 저소득층과 취업자들의 소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돈의 전달 경로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5월 22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대대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국무원은 2.8%였던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을 과거와 달리 3.6% ‘이상’으로 언급하면서 경제 여건에 따라 지출 확대 여지를 남겨뒀다. 총통화량도 한도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작년보다 크게 증가’라고만 언급했다. 사상 처음으로 발행하는 1조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용 특별 국채에다 지방정부의 특수목적채권 발행을 고려하면 이번 전인대에서 국무원이 밝힌 재원만 6조 위안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중국 정부도 경기부양 나서

경기부양 목표를 고용안정에 뒀다는 점도 눈에 띈다. 국무원은 정책과제 중 고용안정을 가장 먼저 언급하며 재정·통화 정책도 고용정책의 전면적 강화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국무원은 고용안정을 통해 소비능력을 끌어올려 내수를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행정부가 생계지원을 위해 현금을 지원하고 국내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경제 주체들의 생계도 책임지기 시작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향후 수년간 글로벌 경제는 큰 정부와 큰 중앙은행이 이끄는 성장 모델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재정·통화 정책을 펴고 있는 데 비해 여력이 적은 신흥국 중 상당수는 국가부도 위험에 직면했다. 정책을 펴기도 전에 안전자산 선호로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브라질(-28.8%)·멕시코(-25.5%)·콜롬비아(-21.4%) 등 중남미 지역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로 원자재 가격 급락까지 겹치면서 이들 국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정책 조합은커녕 당장 재정부담이 높아지면서 기본적인 지출도 펴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달러 부채 부담도 짓누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신흥국의 부채는 8조3000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4조 달러나 증가했다. 저금리 기조로 적은 비용으로 빚을 내는 것이 쉬워지면서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부채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5월 22일 5억 달러 규모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역사상 9번째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기도 했다. GDP 대비 외채 비중이 절반을 웃도는 터키·헝가리·칠레 등도 고위험 국가로 거론된다. 특히 터키는 외환보유액이 3월 기준, 592억 달러로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206.4%에 달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맞서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정책 여력의 차이가 과거보다 더 큰 격차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서영 삼성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이례적인 정책 대응으로 지표들이 안정되고 있지만, 신흥국들은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신흥국들에 대한 대출 지원과 채무상환 유예, 부채탕감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마주한 위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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