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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동영상 시대, 유통업계서 자체 크리에이터 키운다… 자사 제품 가장 잘 알고 빠른 영상 제작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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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시대’가 왔다. 미취학 아동부터 7080 노인까지 저마다 즐겨 찾는 영상 플랫폼과 콘텐츠가 다르다. 특히 미래 소비자인 1020 세대의 삶은 영상과 불가분의 관계다. 이들은 문자 대신 영상으로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백과사전 대신 유튜브에 검색한다. 동영상 콘텐츠의 위상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소비자데이터 분석업체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9월 1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 인원의 91.5%가 ‘동영상 콘텐츠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글·텍스트(66%)’, ‘오디오(65.4%)’, ‘만화(58.6%)’에 비해 월등한 응답률이다. ‘동영상 콘텐츠를 1순위로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47.5%로, 전년 동기 대비 7.1%포인트 증가했다.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유통업계가 동영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5년 전부터 업계는 과거 외주업체에 영상 제작을 맡기거나 유명 인플루언서(SNS 등으로 대중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애써왔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직접 영상을 만드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비전문가인 직원들이 손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수천만원을 들여 방송 스튜디오를 꾸미는가하면 사내 동호회를 꾸려 직원들이 영상 편집 기술을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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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찍는 편의점 MD·AMSR 찍는

백화점 직원… “全직원이 크리에이터”

최근 열린 GS25의 MD(상품기획자) 회의에서는 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윤세영 수산 MD가 촬영·편집한 ‘간장게장’ 먹방과 ASMR 영상이다. 윤 MD는 편의점에서 생소한 간장게장 상품을 어떻게 먹는지 보여주기 위해 직접 제품에 액션 카메라를 들이대 해체하는 방법을 촬영했다. 시청자들의 식욕을 돋우고자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기도 했고, 생생한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ASMR(주로 청각으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도하는 영상)용 마이크도 가까이 댔다.

GS리테일은 모든 MD들을 ‘영상 크리에이터’로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옥에 1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조명기기, 전문가용 영상 프로그램, 크로마키(화면을 합성하는 기술) 등 장비를 갖춰 혼자 영상 한 편을 기획하고 촬영해 편집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든 2분 남짓한 신제품 소개 영상들은 전국에 있는 GS25 가맹점주 1만3000여 명에게 공개된다.

MD들이 윤 MD의 영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영상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도 있지만 이 영상이 타깃 시청자였던 가맹점주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장 먹방의 조회 수는 지난 5월 11일 기준 1만56회로, 전체 영상 평균 조회 수인 7643회를 크게 상회한다. 그만큼 많은 점주들이 영상을 통해 윤 MD가 개발한 간장게장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간장게장 영상이 히트를 친 이후 MD들 사이에서 ‘더욱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경쟁이 붙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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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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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GS리테일은 영상 제작 사내동호회 ‘한컷 한컷’도 출범시켰다. 직원 개인에게 영상 제작 기술 습득을 맡기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배우라는 취지에서다. 동호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온라인 화상회의를 진행해 유튜브 채널 개설 방법부터 카메라 선택 노하우, 영상포맷의 이해, 편집 프로그램 종류와 같은 강의를 실시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백화점업계에서도 포착된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올해 언론PR팀 직원 4명이 직접 촬영과 편집, 출연까지 도맡아 영상을 올리는 새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갤러리아’를 론칭했다. 유튜브를 보며 독학으로 영상 제작 방법을 배운 직원들은 앞서 지난해 프로토타입으로 ‘갤러리아 마스터피스 ASMR’란 제목의 명품시계 ASMR 영상을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1억6000만원에 달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파네라이’ 한정판 시계가 가동되는 모습과 이때 나는 초침소리를 들려주는 이색 콘텐츠로 당시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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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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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식 론칭한 스튜디오 갤러리아에서는 할인행사와 제품 등을 소개하는 ‘브이 커머스(Video Commerce, 비디오 커머스)’, 온라인으로 백화점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G 아뜰리에(Atelier)’ 영상을 20·30대 눈높이로 유머와 패러디 코드를 잘 버무려 선보이고 있다. 원활한 영상 제작을 위해 갤러리아는 지난 3월 광교점 12층에 제작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미디어 스튜디오도 열었다. 이곳에서는 전문 촬영 장비와 방음 시설, 파우더 룸뿐 아니라 라이브 방송까지 가능하다. AK몰에서도 지난해 8월부터 ‘ㅇㅇㅋㅇ’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을 신입사원 2명이 운영하고 있다. 콘텐츠는 대부분 할인행사 등 마케팅 관련이 아닌, 흥미나 정보 위주로 구성됐다. 아이섀도를 다 쓸 때까지 종이에 발라보거나 트렌치코트의 끈을 묶는 여러 가지 방식을 소개하는 식이다. AK몰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브이 커머스’를 경험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시도했다”며 “유튜브를 개인 SNS 채널로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밀레니얼 직원 2명이 촬영부터 편집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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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맹점주·입점 브랜드사까지 동영상 콘텐츠에 호응

영상의 효과는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GS25는 지튜브 출범 이후 텍스트로만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던 과거와 비교해 훨씬 많은 가맹점주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GS25의 가맹점주들은 특정 상품의 판매율 등을 보고 직접 발주를 하는데 신제품의 경우 그런 정보 없이 본사 측의 설명에만 의존해 발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GS25 관계자는 “과거 신제품을 텍스트로 소개하는 게시글은 조회 수가 백 단위를 넘기기 어려웠지만 영상 게시물은 수천 뷰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에서는 입점 브랜드사들의 만족도가 높다. 파네라이 한정판 시계 영상은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영상이 올라간 이후) 다른 시계 브랜드에서도 ASMR 영상을 활용해 자사 제품을 마케팅해 줄 수 있을지 문의가 들어온다”며 “(유튜브 채널이) 입점 브랜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되기 때문에 브랜드사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영상 콘텐츠를 활용해 기업의 친근감을 끌어올리고, 미래 충성고객이 될 수 있는 팬을 만드는 ‘팬슈머’ 마케팅에 채널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AK몰이 운영하고 있는 자체 유튜브 채널 ‘ㅇㅇㅋㅇ’는 탄생 배경부터 제품을 판매하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AK몰 관계자는 “고객들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이 온라인 쇼핑몰 페이지 뒤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궁극적으로는 같은 제품을 사더라도 ‘그 사람들이 일하는 AK몰!’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조업과는 다르게 유통업은 플랫폼과 브랜드에 대한 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치열한 온라인 유통업계에서 AK몰의 팬으로서 상품을 구매하는 ‘팬슈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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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백화점이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갤러리아’에 업로드한 ‘파네라이’ 한정판 시계 ASMR 영상의 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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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영상 콘텐츠가 주요 ‘언택트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영상의 힘은 더욱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 매장 라이브’ 등 오프라인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콘텐츠에 동영상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3월 상위 3개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수는 4119만407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지난해 12월 4029만64명에 비해 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이 직접 영상 콘텐츠의 제작자가 되는 것은 기업이 콘텐츠의 문법에 익숙해지는 데도 긍정적이다. 유종지 CJ ENM 다이아티비 커머스팀장은 “실제 디지털에서 1020 세대의 소통 방식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이렇게 말해도 될까?’, ‘이런 표현은 너무 가볍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콘텐츠 방향을 결정 내리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다”며 “임직원이 직접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세우거나 인플루언서와 협업할 때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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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제작 많아지는 이유는

속도·전문성·비용 때문

유통업계가 산업의 본질과는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동영상 제작을 ‘내재화’하는 데에는 콘텐츠 제작 속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크리에이터들을 광고에 출연시키거나 이들의 영상에 제품을 노출시키는 등의 마케팅은 4~5년 전부터 활발히 이뤄졌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GS리테일과 AK몰은 영상을 평균 일주일에 한 편씩 제작해 업로드하고 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처음 영상을 제작하기로 결정했을 때 외부 업체에 제작 업무를 맡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주당 한 편이라는 업로드 주기를 제안하면 ‘어렵다’고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외주 업체와 영상 한 편을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기획 의도와 아이템 전달-콘티(영상 촬영을 위해 각본을 바탕으로 필요한 모든 사항을 기록한 것) 확정-영상 제작 및 수정’ 등 과정을 거쳐야 한다. 1주일은 제작까지만 하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기 때문에 수정 사안까지 완벽히 반영된 영상을 1주일 주기로 업로드하기는 곤란하다는 판단이었다. 갤러리아백화점 관계자도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춘 덕택에 지난 3월 오픈한 광교점의 VIP 라운지를 소개하는 영상은 자체 채널을 통해 가장 먼저 공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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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메이크업 AK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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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영상을 제작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수십 년간 영업해 온 곰탕 맛집과 협업해 최근 PB(자체 제작) 상품을 출시했는데, 담당 MD가 해당 맛집의 역사와 기획 배경을 영상에 자세히 녹여 (가맹점주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비용절감 역시 영상을 직접 제작하면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 중 하나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100만 단위를 넘어가는 ‘메가 인플루언서’의 경우 2018년 이미 시간당 출연료가 수천만원대로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한 메가 인플루언서와 3~6개월간 캠페인을 기획했던 한 유통 기업은 수억원대의 마케팅 비용 부담에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에게는 연예인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며 “이들과 협업하기 위해 소요되는 마케팅 비용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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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몰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ㅇㅇㅋㅇ’에서 밀레니얼 직원 2명이 ‘섀도 몇 번 만에 다 쓸까’를 주제로 영상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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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와의 ‘친밀성’이 핵심

직원 크리에이터 친근감 형성에 유리

‘친근한 인플루언서’들이 각광받고 있는 미디어 트렌드를 고려하면 유통업계가 직원들을 크리에이터로 육성하고 있는 움직임은 개연성이 있다.

최근 미디어·유통업계에서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란 수천~수만 명 사이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로,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메가 인플루언서’,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매크로 인플루언서’와 구분된다. 윤반석 서울스토어 CEO는 지난해 12월 열린 ‘매일경제 패션·뷰티·유통 CEO포럼’에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는 동영상에 반응을 보이는 정도를 나타내는 ‘인게이지먼트’가 최고 60%까지 나온다”며 “구매 전환율(영상 시청자 중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20%에 이르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구독자 수가 적음에도 이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원동력은 구독자와의 ‘관계성’에 있다.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대중에게 연예인과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돼 거리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는 특정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구독자들과 더 깊은 관계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들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들이 사용한 제품을 함께 소비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갖게 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유통 기업의 직원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은 세련된 편집 기술과 감각적인 그래픽 등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친근하고 정보의 수준이 한층 깊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CF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긴 어렵겠지만 특정 취향을 지닌 시청자들을 잠재 소비자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강인선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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