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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어떻게 우리는 중국산 전자제품에 중독되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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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야사-38] 중국 광둥성 선전은 중국 전자제품 제조의 중심지와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1988년 대만 폭스콘이 처음 위탁생산 공장을 만든 곳도 이곳 선전이며 화웨이, DJI 같은 중국 대표 전자제품 제조기업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전기차 1위인 BYD, 인터넷 거인 텐센트의 본사도 이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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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홍콩에 인접한 어촌이었던 선전(深 )을 1980년 특별경제구역(SEZ)으로 지정했고 40년이 지난 지금 선전은 홍콩보다 더 부유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진=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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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여러 전자기업의 제조 공장이 선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일부는 공장을 직접 운영했고, 일부는 위탁제조 전문회사의 공장이었습니다. 선전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조 단지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공장들도 주변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부품과 전자제품을 유통하는 전자 유통단지도 선전에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하다고 하는 화창베이입니다. 화창베이는 중국이 자체 휴대전화 브랜드가 커지기 전에는 '짝퉁'의 온상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선전은 전 세계에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화창베이를 중심으로 선전과 광둥성 일대(그레이터 베이 에이리어)에 전자산업과 관련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관련 스타트업의 창업, 전자제품의 설계, 부품 구매, 시제품 제작, 양산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인프라가 구축된 곳이 바로 화창베이와 선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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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슨으로 유명한 디베아 청소기는 중국 생활가전이 우리나라 가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디베아는 중국 장쑤성 쑤저우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진=디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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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전의 제조 인프라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능력은 창업 후 초기에는 제조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좋은 기회가 됩니다. 아이디어가 있고 제품을 잘 디자인하기만 하면 쉽게 가전제품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형 가전이 아니라 10만~30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는 소형가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비싼 TV나 냉장고는 결혼할 때나 한 번 구매하고 10년간은 구매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소형가전은 반복적으로 구매할 뿐만 아니라 1인가구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기술력보다는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군이 공기청정기, 가습기, 청소기, 커피머신, 에어프라이어, 선풍기 같은 것들인데요. 해외 브랜드 중에서는 발뮤다, 샤오미, 다이슨 같은 전자회사 제품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형가전·생활가전제품을 보면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태반이 중국에서 제품을 제조합니다. 국내 혹은 중국에 있는 일종의 위탁생산 코디네이터가 중간에 껴서 중소기업의 주문에 맞춰 제품을 공급해줍니다. 중견 가전제품 기업도 주력 제품이 아닌 구색 갖추기 식으로 판매하는 제품은 중국산을 OEM 형태로 들여와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소형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지역 중 한 곳이 선전입니다. 물론 선전 외에도 중국 전역에 전자제품 제조 공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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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공기청정기도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있고,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있습니다. /사진=삼성전자


소비자들에게도 중국산 전자제품은 큰 이득이 됩니다. 전자제품을 부담 없이 구매하고, 고장나거나 싫증나면 이를 버리고 다시 최신제품을 구매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편리함 때문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산 전자제품에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중독되었다는 표현이 좀 과한 걸까요? 제가 중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저렴한 중국산 제품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소비가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로 인해 탄소와 쓰레기 배출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Made in China’에 중독되면서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둘째는 중국산을 사용하다보니 국내산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이는 국내 제조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산 구입이 당연하다보니 국내 제조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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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수입산이 대체로 증가하고 있는데 전자제품 수입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료=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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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전자제품은 빠른 속도로 시장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정확한 점유율은 나오지 않지만 우회적으로 이를 추정해보겠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제조업 국내 공급 동향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수입산 점유비율은 2014년 38%에서 2019년 56.4%로 5년 사이에 18.4%포인트나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중국산의 증가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국산 가전제품 수입액은 2015년 17억8000만달러(약 2조2000억원)에서 2019년에는 31억7000만달러(약 3조9300억원)로 늘어났습니다. 소형가전이 포함된 기타가전류가 20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가 전 세계 1등 제품을 만든다고 하는 TV, 냉장고 등의 수입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물론 여기서 중국산 전자제품이란 하이얼, TCL 등 중국 전자회사들이 자사 브랜드를 달고 진출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제조를 맡겨서 수입해온 경우가 많습니다. 소비자가 직구를 통해서 중국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경쟁하는 국내 전자산업은 어떤 상황일까요? 이것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두 가지로 나눠봐야 합니다.

먼저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자기업들은 중국과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은 이미 국내에서 해외로 생산 기반을 많이 옮겼기 때문에 이제는 국내 제조와는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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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G전자는 구미 TV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진=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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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을 브랜드를 달고 있는 완제품 경쟁(휴대전화, 가전제품 등)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지역별로는 다르지만 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에 한국이 거의 밀려났고 고가 시장에서는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부품 영역에서도 우리나라 전자회사들은 중국 전자회사들의 직면에 도전해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중국이 소위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면서 따라오고 있고,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개발 분야만을 보자면 여전히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 분야에서 일본을 꺾었던 것처럼 중국이 기술과 브랜드를 획득하면 우리나라를 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요.

먼저 제조 부문의 경쟁력 때문입니다. 중국은 넓은 내수시장을 이용해 글로벌 기업을 키우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해외기업의 공장을 국내에 유치해 제조 부문의 경쟁력을 키웁니다. 그러다보면 제조경쟁력뿐만 아니라 첨단기술이 자연히 중국에 축적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토종기업이 등장합니다. 중국 정부는 이 중국 토종기업에 각종 혜택을 몰아줍니다. 중국 국민들도 애국심을 발휘해 토종기업의 제품을 구매합니다. 하지만 해외기업은 중국을 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 이상 중국에서 생산해 수출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중국 시장 자체가 커졌기 때문에 이를 공략하려면 중국 내에 공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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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위를 차지하면 쉽게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세계1위 고속철 제조회사인 중궈중처(CRRC)는 자국에서 확보한 경쟁력으로 전 세계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사진=CR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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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점차 토종기업이 해외기업을 꺾고 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고 결국에는 해외기업도 중국에서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토종기업의 브랜드로 전 세계에 진출합니다. 토종기업은 중국의 제조경쟁력을 바탕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해 쉽게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입니다.

샤오미, 화웨이, 하이얼, TCL 등 여러 중국 기업이 이 같은 성장 경로를 밟아왔습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브랜드도 비슷합니다. 해외기업을 유치해 제조경쟁력과 기술력을 획득한 후에는 토종기업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다시 토종기업이 해외로 진출합니다. 중국 B2B 기업이 제품을 판매하는 외국이나 외국기업은 중국과의 관계 혹은 중국 내수시장을 위해서 중국 B2B 기업에 혜택을 주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조선, 고속열차, 건설 등이 이 같은 성장 경로를 밟아왔습니다.

반면 (상)편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미국, 일본→한국, 대만, 싱가포르→중국으로 옮겨가는 전자산업의 주도권은 중국에서는 더 이상 다른 국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워낙 넓은 중국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싼 다른 지역으로 쉽게 옮길 수 있기도 하고, 중국이 전자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절대 잃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뛰어난 제조 인프라뿐만 아니라 넓은 내수시장, 세계적인 인터넷기업(알리바바·텐센트), 우수한 인재까지 몰려 있어서 '동방불패'급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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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패를 동방신기로 이길 수는 없는 걸까요?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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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전자산업에서 중국의 부상은 돌이킬 수 없는 불가피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이 전자산업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필이면 중국이라는 나라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있고, 주력 산업이 중국과 겹친다는 것은 한국에 큰 불행입니다. 이미 전자산업은 단순한 기업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의 무대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소형가전과 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국내 중소기업 측면에서 보자면, 이 시장은 개선이 필요하고 또 개선이 가능합니다. 소형가전에서 중국산 비중을 줄이고, 제조를 하지 않는 중소기업들도 국내 OEM(제조)으로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후생을 포기하고 중국산이 아니라 한국산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중국산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일이지만 이는 결국 중국 소형가전 전자산업에 우리가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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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뮤다 토스터는 중국 선전 인근에 공장을 둔 일본 제조기업이 생산합니다. /사진=발뮤다


앞서 상편에서 저는 전자산업에서 제조와 개발의 분리가 보편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전자산업에서 승자가 되고 중국이 이를 추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제조와 개발'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조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제조 과정에서 얻어지는 노하우가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두 영역의 교류가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익성을 위해 제조를 아웃소싱하게 되면 제조 과정에서 얻어지는 노하우는 제조기업이 독차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제조만을 아웃소싱하게되지만 나중에는 개발과 디자인까지 아웃소싱을 맡기게 됩니다. OEM 회사가 ODM(제조업자개발생산·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회사로 점차 진화하는 이유입니다. 개발과 디자인까지 제조업체에 의존하게 되면 결국 이 회사에 남는 것은 브랜드와 마케팅뿐입니다.

2012년 미국의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한 제조업 관련 보고서는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나중에 연구개발(R&D)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기 힘들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조와 R&D의 동일장소 배치(co-location)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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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Korea 소형가전(생활가전)이 살아남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선택해줄 때만 가능합니다. /사진=위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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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가전은 첨단기술이 필요없는 낮은 수준의 전자산업이지만 그래도 가장 기초적인 전자산업의 인프라가 되는 영역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시장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중소기업이 급격하게 클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기초적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는 장기적인 전자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중기야사는 너무 큰 이야기를 다룬 것 같아서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1) 한국은 미국과 일본 선진국의 전자제품 생산기지로 시작해 지금은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3위의 전자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제조경쟁력을 바탕으로 지금은 개발경쟁력에서도 한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 전자산업의 역사를 보면 제조와 개발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제조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3)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소형가전은 저부가가치 산업이지만 이를 제조하는 것을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소형가전을 개발하고 쉽게 제조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합니다.

[이덕주 벤처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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