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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총선 이모저모

[월간중앙] 서울 아파트 분포로 분석해본 4·15 총선 당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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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분석

‘살(강남·용산)’을 떼어주고 ‘뼈(나머지 서울 지역구)’를 취한 민주당의 서울 압승

■ 20·21대 총선 서울 전 지역 동(洞) 투표 결과 조사… 부동산 정책에 감성적 평가 경향

■ 계층투표 기조 속 통합당 강남을·송파을·용산 탈환했지만 非강남 7개 지역구 전부 뺏겨

■ 文정부 들어 서울 집값 급등할수록 표심 양극화… 민주당은 ‘소셜믹스’ 노선 강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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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사거리의 야경. 총선에서 강남은 이해관계에 충실한 투표를 했지만,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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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부동산 투자는 핑크색 지역에만 하면 된다.”

4·15 총선 직후 회원수 100만 명 이상인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선 이런 냉소적 농담이 돌았다. 핑크색은 미래 상징색이다. 서울 49석 중 통합당 의석은 8석이었다. 서초갑·을, 강남 갑·을·병, 송파 갑·을 등 ‘강남 3구’ 이외에는 용산이 유일했다. 전부 소위 부촌 지역이다. 이로써 통합당은 ‘강남부자당’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1표라도 더 얻는 쪽이 모든 권력을 쥐는 현행 선거 제도에서 치명적이다.

보수의 서울 몰락은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이다.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인 2012년 19대 총선에서 16석, 2016년 20대 총선에서 12석으로 꾸준히 줄었다. 총선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보수는 진보 성향인 박원순 후보에게 3번 연속 패배했다.

유권자가 표심을 결정하는 요인은 지역·세대·성별 등 여러 가지다. 이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은 계층투표 경향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풀어 쓰면 ‘얼마나 가졌느냐’가 지지정당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월간중앙은 20대와 21대 총선의 서울 전 지역 동(洞) 투표 결과를 조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참조했다. 어떻게 서울에서 더불어민주당이 41석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탐색해봤다. 이는 곧 통합당이 서울에서 참패했으며, 어디서부터 재건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관한 단서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의 지지 없이 선거 승리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효과’ 망각한 통합당의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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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총선에서 통합당(전신 새누리당)은 강남을과 송파을에서 민주당에 패했다. 전현희 후보가 강남을에서, 최명길 후보가 송파을에서 당선됐다. 강남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던 전 후보는 4만8381표를 얻어 당시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4만1757표)를 따돌렸다. 당시 전 후보는 개포1동과 수서동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동에서 김 후보에 앞섰다. 특히 세곡동에서는 1만1291표를 얻어 7100표의 김 후보를 압도했다. 그러나 4년 후 4·15 총선에서 전 후보(4만7157표)는 통합당 박진 후보(5만1762표)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전 후보는 개포4동, 일원1동, 세곡동만 승리했고, 나머지를 전부 내줬다. 세곡동의 표 차이도 1만1778표(전 후보) 대 9781표(박 후보)로 줄었다. 통합당 공천 잡음 등으로 박 후보가 한참 늦게 선거전에 뛰어들었음에도 개포동·일원동 대부분과 수서동은 몰표를 줬다.

후보보다 정당에 가중치를 두고, 계층투표에 충실했던 또 하나의 지역구는 강남갑이다. 통합당 태영호 후보(6만324표)는 민주당 김성곤 후보(4만935표)에 압승을 거뒀다. 4년 전 총선(새누리당 이종구 후보 4만4682표 대 민주당 김성곤 후보 3만6826표)에 비하면 격차가 훨씬 더 벌어졌다. 통합당은 경제·금융통 이 후보가 불출마 선언한 이 지역에 전략 공천 차원에서 북한 고위급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후보를 투입했다. 부동산 이슈에 민감한 강남갑에 북한 전문가를 공천한 것을 두고 ‘미스매치’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지역구의 신사동·논현2동·역삼2동·압구정동·청담동 모든 선거구에서 태 후보가 압승했다. 논현1동과 역삼1동만 민주당 김 후보가 이겼다. 특히 강남에서도 중심으로 꼽히는 압구정동에서 1만1565표(태영호) 대 3046표(김성곤)의 격차가 났다. 청담동에서도 9549표(태영호) 대 4595표(김성곤)였다.

반면 통합당은 20대 총선에 견줘 중구성동을·강북갑·도봉을·양천을·강서을·동작을·관악을 등 강남 외 7곳의 지역구를 상실했다. 이 가운데 지상욱(성동을), 정양석(강북갑), 김선동(도봉을), 나경원(동작을), 오신환(관악을) 후보가 재공천을 받았지만, 한 명도 생환하지 못했다. 양천을이 지역구였던 김용태 의원은 험지인 구로을로 옮겨 민주당 윤건영 후보와 붙었지만, 패배했다. 강서을의 김성태 의원은 불출마했다.

통합당의 강남 이외 지역 전멸은 20대 총선부터 전조가 있었다. 당시 강남 이외 지역에서 당선된 보수 진영 후보 중 5명은 국민의당에 의한 어부지리 효과를 얻었다. 이번에 재공천을 받아 낙선한 5명이 그들이었다. 예를 들어 4년 전 총선 당시 지상욱 후보는 국민의당 정호준 후보가,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국민의당 장진영 후보가 각각 민주당 후보 표를 잠식한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1대 총선에서 제3지대 없이 진보(민주당)와 보수(통합당)가 1:1로 맞붙는 구도로 가면서 추풍낙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 총선에서 국민의당 영향 없이도 당선되는 득표력을 보여준 김용태, 김성태 의원은 텃밭 지역구에서 출마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길 만한 지역구도 통합당이 공천 과정에서 스스로 내준 격이다.



서울 32개 지역구 민주당 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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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갑은 탈북 외교관 출신인 통합당 태영호 후보에게 과거보다 더 많은 표를 보냈다. /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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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이라는 스코어도 일방적이지만, 뜯어볼수록 통합당에 절망적 요소가 짙어진다. 4·15 총선의 동(洞) 투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중구성동갑·동대문을·중랑갑·중랑을·성북갑·성북을·강북갑·강북을·도봉갑·도봉을·노원갑·노원을·노원병·은평갑·은평을·서대문갑·서대문을·마포갑·마포을·양천을·강서갑·강서을·강서병·구로갑·구로을·금천·영등포갑·동작갑·관악갑·관악을·송파병·강동을 등 무려 32개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모든 동(洞)에서 통합당 후보를 압도한 ‘올킬’을 달성했다. 통합당의 서울 총선 결과는 양적(승패 여부)으로도 참패였지만, 질적(동별 득표)으로는 더 참혹했다. 질적 투표 결과가 이렇게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은(코로나19와 ‘돈 살포’ 같은 신생 변수의 영향을 논외로 하더라도) 향후 선거에서도 반등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추론을 낳는다.

통합당이 향후 어떤 형태로든 강남 혹은 한강벨트 이외 지역의 서민과 중산층 계층을 돌려놓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어떤 선거든지 최소 서울 32개 지역구는 내주고 시작한다’는 예언의 등장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

4·15 총선 서울 지역에서 통합당이 승리한 동(洞)은 어디일까? 월간중앙 조사에 따르면 종로의 사직동·평창동, 중구 성동을의 소공동·회현동·명동·광희동·을지로동·옥수동, 용산의 한강로동·이촌제1동·이촌제2동·이태원제1동·한남동·서빙고동, 광진갑의 광장동, 광진을의 구의제3동·자양제3동·자양제4동, 동대문갑의 청량리동, 양천갑의 목1동·목5동·신정1동·신정6동, 영등포을의 여의도동, 동작을의 흑석동·사당제3동·강동갑의 상일동·명일제1동·명일제2동·고덕제1동·고덕제2동·암사제3동 등이다. 서초·강남·송파 등 강남 3구 지역 이외 동(洞)만 꼽아보면 이렇다.

결국 서울 총선 결과에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구도가 투영됐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통합당이 이긴 지역구나 동(洞) 상당수는 소위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부촌(富村) 지역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부촌 지역이 이해관계에 따라 보수 정당을 강력하게 지지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나머지 지역은 진보 정당 지지로 결속하는 ‘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20대 총선보다 21대 총선에서 이런 전선은 훨씬 선명해졌다.



철저하게 외면당한 ‘민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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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고민정 후보는 광진을에서 이겼지만, 통합당과의 격차는 과거보다 좁혀졌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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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통합당의 전신) 대표는 2019년 9월 민부론(民富論)을 내놨다. ‘국민이 잘사는 나라’가 부제였다. 민부론의 20대 정책과제 중 경제 활성화 대책 중 8번째로 부동산이 담겼다. ‘부동산 세제, 부담금, 금융규제, 공공지원 기준의 빈번한 변동을 제어해 국민과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시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주택 성능개선과 재정비로 도심 내 추가 주택을 확보하는 등 지속가능한 공급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풀어 쓰면 ▷종부세, 재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금을 낮춰주겠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겠다 ▷서울 외곽 수도권에 건설 예정인 3기 신도시를 철회하겠다는 맥락이다. 나름 시장경제 논리에 충실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공급보다 증세나 대출규제 등, 수요 억제에 집착하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집값을 만들어버린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과 대비되는 ‘안티테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부론의 부동산 정책은 태생적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강남, 용산, 여의도처럼 재건축이 숙원인 부자 동네가 수혜를 입는다’는 의구심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고스란히 4·15 총선 민심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윤창현 미래한국당 의원은 “민주당은 경제정책을 정치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부동산정책도 감성의 영역으로 흘러갔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삼성동, 대치동, 도곡동을 품은 강남병 지역구을 들 수 있다. 대치4동의 사전투표를 제외한 모든 투표 결과에서 통합당 유경준 후보가 민주당 김한규 후보를 압도했다. 특히 도곡2동은 4236표(김 후보) 대 1만3746표(유 후보)이라는 기록적 격차가 나왔다. 이 중 도곡2동 제4 투표소는 298표(김 후보) 대 2374표(유 후보)라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냈다. 도곡2동은 강남 고가 아파트의 아이콘처럼 각인된 타워팰리스가 있는 지역이다. 또 대치동에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상징 격인 은마아파트, 강남 학군지의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래미안 대치팰리스가 있다.

현재 강남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초구 반포(반포본동·반포 1~4동)에는 래미안 퍼스티지, 반포 리체 등 신축과 반포주공 같은 재건축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이곳에서 통합당 박성중 후보는 반포1동 제5투표소를 제외한 모든 투표소에서 민주당 박경미 후보를 이겼다. 반포본동(2191:4579), 반포1동(5661:1만21), 반포2동(2163:6431), 반포3동(3332:7991), 반포4동(3418:6606) 등 박 후보가 두 배 안팎으로 우세했다.



고민정과 배현진의 당선이 의미하는 것



강남을을 통합당이 탈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포2동(전현희 4021표 대 박진 8423표)이 결정적이었다. 4년 전에는 전 후보가 이긴 지역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가 더블스코어로 앞선 것은 개포 신축인 디에이치아너힐스, 래미안블레스티지 그리고 재건축 아파트인 개포 주공5단지 등의 역할이 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송파을과 용산도 유사한 패턴이었다. 용산에서 통합당 권영세 후보는 초고급 주상복합 첼리투스나 재건축 블루칩 한강맨션 등이 있는 동부이촌동을 포함한 한강라인과 한남더힐, 나인원, 유엔빌리지 등을 품은 대한민국 최고 부촌 한남동의 몰표가 없었다면, 890표 차이의 신승을 거둘 수 없었다. 한남동 제3투표소에서는 388표(민주당 강태웅 후보) 대 1326표(권 후보), 서빙고동 제3투표소에서는 253표(강 후보) 대 1571표(권 후보)의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프레임이 고착되면 후보의 개인 역량이 설 자리가 협소해진다. 부자와 부자가 아닌 자의 대립구도는 곧 민주당 필승구도였다. 살(강남과 용산)을 떼어주고, 뼈(나머지 서울 지역구)를 취하는 전략이 먹힌 셈이다. 이 구도에서 가장 수혜를 본 정치인으로 민주당 광진을의 고민정 후보와 통합당 송파을의 배현진 후보를 꼽을 수 있다. 각각 통합당 오세훈과 민주당 최재성이라는 중량급 정치인과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광진을에서 고 후보(5만4210표)는 오 후보(5만1464표)에 약 2800표를 앞섰다. 4년 전 선거에서는 민주당 추미애 후보가 새누리당 정준길 후보에 약 1만 표를 이겼던 민주당 아성이었다. 당시 추 후보는 광진을 모든 동에서 정 후보를 눌렀다. 여기서 오 후보는 구의제3동과 자양제3·4동에서 선전했지만, 대세를 뒤엎진 못했다. 이웃한 광진갑에서도 통합당 김병민 후보가 유일하게 앞선 광장동은 아파트촌이다.

송파을은 2018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최재성 후보가 통합당 배현진 후보에게 승리한 지역이었다. 당시 가락1동(최 후보 154표, 배 후보 136표)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러나 2년 후 이곳에서 배 후보는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 9500세대가 넘는 대단지아파트 헬리오시티가 들어선 것이다. 헬리오시티는 배 후보(9581표)에게 지지를 보냈다. 최 후보(6430표)를 압도했다. 잠실의 엘스·리센츠·트리지움·레이크팰리스, 그리고 대치동 은마와 더불어 재건축 대장주인 잠실주공 5단지와 우성아파트, 문정2동의 재건축 아파트인 올림픽훼밀리아파트 등에서 배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최 후보가 석촌동, 삼전동, 잠실본동에서 이겼어도 버틸 수 없었다.

경기도에서는 분당갑이 계층투표로 당선자를 가렸다. 통합당 김은혜 후보가 현역인 민주당 김병관 후보를 1100여 표 차이로 이겼다. 서현1·2동과 이매2동, 야탑2동 등, 1기 신도시 지역들은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 지연에 대한 불만을 표에 반영했다. 판교 신도시에 해당하는 운중동도 김 후보를 밀어줬다.

이에 비해 빅매치로 이목을 끈 민주당 이낙연 대 통합당 황교안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전통적 부촌인 평창동 정도를 제외하면 이 후보가 우세했다. 다만 주목할 점은 교남동 제3투표소에서 황 후보를 더 많이 찍었다는 사실이다. 종로구의 초고가 아파트인 경희궁자이의 표심에 호소하기 위해 이 후보는 이곳에 전세를 얻었다. 그럼에도 표심을 돌리진 못했다. 흥미롭게도 황 후보 역시 종로구 혜화동으로 이사했지만, 정작 이곳에서 이 후보에게 패했다.



서울 집값 날아갈수록 민주당 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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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경. 송파을에서 통합당 배현진 후보가 당선된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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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으로 2020년 4·15 총선은 ‘역설의 선거’였다. 코로나19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후유증이 의도와 무관하게 민주당 승리의 특효약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 사례 중 하나로 고양정에서는 ‘3기 신도시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통합당 김현아 후보가 패배했다. 이곳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역구였다. 서울과 일산 사이 창릉지구에 3만8000가구를 수용하는 신도시가 들어서면 일산 집값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지역 유권자들은 민주당 이용우 후보에게 과반 이상 지지를 몰아줬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이 지역 세입자 분들은 3기 신도시를 찬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갤럽이 5월 8일 내놓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71%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 4년 차 정부에 이례적인 현상이다. 다만 여전히 국민은 경제·민생에 가장 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 관해 불신이 짙다. 한국갤럽은 분기별로 부동산 정책에 관한 평가를 측정하고 있는데 계속 악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1분기(3월)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54%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 리브온이 발표하는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20년 1월 사상 최초로 9억원을 돌파(9억1216만원)했다. 문 정부 들어 3억원이 올랐다. 이 지수는 12·16대책과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도 9억1998만원(2020년 4월)으로 유지되고 있다. 신한은행이 4월 27일 발간한 ‘2020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부동산 자산 격차는 2018년 11.6배에서 2019년 12.3배로 더 벌어졌다. 문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내놓을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일부 주택에 관한 양도세 한시적 완화로 강남 등 고가주택 가격이 5월까지 하락 추세인 것 분명하다. 그러나 15억, 20억 집값의 등락은 중산층, 서민에게 실제적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6억에서 9억 안팎의 실수요 주택들인데, 지금 이런 가격대의 집들 상당수는 끊임없이 신고가를 찍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정부는 이 가격대의 아파트 상승을 억제할 정책은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총선 직전 수원·용인·성남 등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치솟았을 때에도 표심을 잃을 걸 우려한 민주당의 견제로 규제에 소극적이었다.

이 와중에 전세자금 대출은 2020년 3월 말 기준 86조2534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12월 80조를 돌파한 데 이어 매월 2조원씩 올라가고 있다. 상승한 전세가는 집값을 밀어 올릴 것이다. 전·월세도 올라가고 집값도 올라가는, 서민층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텐데 정작 서민층에서 민주당을 찍는 ‘기묘한’ 상황이 총선에서 연출된 것이다.

문 정부 부동산정책의 설계자라 할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 실장은 2011년 쓴 책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집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투표 성향에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대형 아파트가 밀집된 고소득층은 한나라당(현 통합당)에 주로 투표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민주당이다. 이 때문에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재개발돼 아파트로 바뀌면 투표 성향도 확 달라진다’고 썼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공학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접근하면 서울 집값은 저 멀리 날아가도 민주당 입장에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게 된다. 집값을 잡거나 공급을 늘려서 유주택자를 많이 만드는 쪽보다, 법인·신탁·다주택자를 겨냥해 증세와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 갱신제를 추진하는 편이 서민층에게 더 강렬하게 어필할 수 있다.



커지는 보유세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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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정비창 부지 전경. 문재인 정부의 공급 정책은 공공임대주택에 방점이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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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구도에는 필연적 한계가 뒤따른다. 집값이 오를수록 보수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문 대통령 취임 시점인 2017년 5월, 10억 아래였던 잠실 엘스 20평형대는 현 시점에 최고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렇다고 이 지역 집주인들이 더 열성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리 없다. 어느 시점부터 불어난 보유세에 불만을 갖게 된다. 코로나19로 경제가 꺾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집값을 ‘원상회복’시킬 극약처방을 꺼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집값마저 떨어지면,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디플레가 확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 조정이나 보합이 정부가 바라는 현실적 최선일 것이다.

일례로 마포갑에서 민주당 노웅래 후보는 통합당 강승규 후보를 모든 동(洞)에서 이겼다. 마포는 문 정부 들어 집값 상승이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그러나 투표소별로 뜯어보면, 아현동 5·6투표소에선 노 후보가 패했다. 3885세대의 신축 대단지인 마포 래미안푸르지오가 위치한 곳이다. 이 밖에 마포 대장 아파트인 래미안리버웰·리버파크 등이 자리한 용강동을 비롯해 염리동·공덕동 등의 아파트 밀집지역 투표소에선 통합당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향후 마포에는 신촌 그랑자이, 마포 프리스티지자이 등 신축 아파트가 더 생겨난다. 성동구와 광진구 등도 마포와 유사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 양천갑에서도 민주당 황희 후보는 당선됐지만 목1동, 목5동, 신정1동, 신정6동에선 통합당 송한섭 후보에게 패했다. 4년 전 총선에서 황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모든 동에서 이겼지만, 이번엔 달랐다.



정부의 용산 개발에 담긴 함의



정부는 5월 7일 총선 이후 첫 부동산정책을 내놨다. 이번엔 공급 대책이었다. ‘공공 주도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해 서울에서만 7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계획의 핵심은 용산구 서부이촌동 부근 철도정비창 구역에 짓겠다는 8000세대 아파트였다. 정비창 부지는 2007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에 포함됐다가 경기침체와 자금조달 문제로 2013년 좌초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이 지역과 여의도를 묶는 ‘통개발’을 발표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복판인 용산에 ‘미니신도시’를 집어넣겠다는 발상에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체 물량의 절반을 임대와 분양을 포함한 공공주택으로 공급하는 계획에 대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라면 공공임대주택 확대보다 사회적 부(富)를 극대화하는 방향이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5·7대책의 행간에는 정부의 공급정책 방향성이 담겨 있다. 강남 등 핵심지 재건축이 당분간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그것이다. 공공 재개발만 담았을 뿐, 재건축 언급은 없었다. 이미 재건축은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여기에 ‘공공(公共)’이라는 개념이 추가되는 형국이다. ‘어떤 형태의 재건축이 됐든,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허가를 내준다’는 소셜믹스(social mix)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동부이촌동 왕궁아파트는 1:1 재건축을 추진함에도 ‘기부채납 형식으로 임대아파트를 넣겠다’는 조건에 응한 뒤에야 서울시의 승인을 얻었다. 이 같은 여건에서 재건축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건축 조합원들이야 분통 터질 일이겠지만, 이해당사자가 아닌 계층은 딱히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또 소셜믹스 덕분에 서울 요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가구는 정부·여당에 강한 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심 교수는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이런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스멀스멀 토지공개념이 나오고 있다. 4·15 총선 결과, 진보 성향 의석만 190석이었다. 개헌 가능선(200석)에 접근해 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공시가격 현실화, 종부세 강화,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등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종부세 인상안은 통합당의 반대로 20대 국회 내 무산이 유력하다. 6월에 출범하는 21대 국회 통과는 확실시되지만, 이르면 2021년에야 인상안을 매길 수 있다. 이러면 민주당은 2020년 내 종부세 인상이 안 된 탓을 통합당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통합당에 재차 ‘강남 부자당’ 낙인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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