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25일 오후 2시 예정된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은 오전 10시부터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룬 기자회견장으로 인해 여러 차례 순연됐다.
다섯 대 남짓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은 일찍이 취재 차량으로 꽉 들어찼다. 취재차량은 인근 골목까지 빼곡이 이어졌다. 찻집 앞에는 순번표까지 등장했다. 12시가 되자 순번은 100명을 훌쩍 넘겼다. 당초 기자회견이 예정된 대구 남구 봉덕동의 찻집은 20여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규모다.
앞서 지난 7일 이 할머니는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유용 의혹 등을 제기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25일) 기자회견에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함께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윤 당선인은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2층의 찻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밖 주차장까지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 없어지자 이 할머니를 돕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시민모임)은 급하게 다른 장소를 섭외했다. 장소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급하게 섭외한 인근 호텔의 홀은 100여 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 다시 20분 거리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인터불고 호텔로 장소가 변경됐다.
2시 반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회견이 시작될 수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회견장에 들어섰다. 기자회견은 취재진 200여 명이 몰린 가운데 약 1시간가량 진행됐다.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도 대거 참석한 듯 보였다. 종종 채널 시청자들에게 '가짜 위안부', '윤미향 앵벌이' 등의 설명을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이 할머니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지 않고 즉석으로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준비되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이 할머니의 분노와 서운함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할머니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정의연 관련 의혹 철저한 진상 규명 촉구 △향후 위안부 피해 운동 전개 방향 등으로 나뉘었다. 92세 고령의 할머니 상태를 고려해 취재진의 질문은 5개로 한정했다.
▲25일 대구 수성구 호텔 인터불고 즐거운홀에서 열린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었던 찻집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으나 취재진이 200여 명가량 몰리자 급하게 장소를 바꿨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지난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정의기억연대(전 정신대대책협의회) 운영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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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용서한 적 없다. 검찰이 알아서 할 것"
이 할머니는 기자회견 시작과 함께 격앙된 목소리로 "1차 기자회견 후 생각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회계 의혹과 안성 쉼터 관련 보도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지난 19일 윤 당선인이 이 할머니를 찾아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화해했다고 전해졌지만 이 할머니는 "용서한 것이 없다"고 강한 어조로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불쾌했다는 듯 "윤미향이가 갑자기 찾아와서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면서 "용서할 것이 뭐 있겠나. 검찰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뭣을 원수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다. 한번 안아달라기에 '이게 마지막이다' 그런 생각으로 안아주니 눈물이 왈칵 났다"며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대협 활동 이해 못한 것 많아...후원금 받을 때 부끄러워"
이 할머니는 처음 정대협의 위안부 모임에 나갔을 때를 회상했다. "일본의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돈을 1000엔인가 줬다면서 100만 원 씩 나눠줬다"며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정대협을)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했다. 한번은 농구장에서 선수들에게 모금을 받아왔다. 왜 그런 줄 몰랐다.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부끄러웠다"며 "그런 줄 모르고 (모금활동을) 30년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의 전신) 운영에 불만이 쌓였던 것으로 보였다. 연신 "정신대는 공장에 끌려간 할머니들"이라며 일본군 '위안부'와 다른 점을 강조했다.
"정신대랑 위안부는 다른데 다 섞어놓고 사죄해라 배상하라 그러면 일본사람들이 뭔 줄 알고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해야겠다 생각하겠느냐"며 "이건 사죄도 배상도 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정대협에 팔렸다'는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고초는 지금도 생각난다.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걸 밝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증언 받은 걸로 책을 만들어 파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위안부' 운동에 정작 피해 당사자가 소외되어 있었다는 점에 불만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왜 30여 년이 지난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자기가 먼저 30년을 (위안부 운동을) 하고 하루아침에 배신했다. 배신당한 게 너무 분했다. 국회의원도 자기 사리사욕 챙기는 거 아닌가"라고 답했다.
윤 당선인의 출마가 갈등 폭발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운동 멈추자는 뜻 아니야...한일 학생들 친하게 지내야"
이 할머니는 끝으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감정이 격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할머니는 연신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문제를) 해결해줄 사람들은 우리 학생들"이라며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역사를 바로 알고 억울하게 희생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받아야 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윤 당선인이 사퇴하길 바라느냐', '윤 당선인이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 할머니는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이 알아서 할 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서혁수 시민모임 대표는 "과열된 취재경쟁으로 할머니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며 "고령의 할머니가 빠른시일 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취재진에게 당부했다.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25일 기자회견에서 준비해 온 기자회견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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