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를 향한 의혹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을 열어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의 전신)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윤 당선자의 국회의원 당선 자격과 관련해서는 "자기가 마음대로 나간 거니 내가 뭐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40분가량 넘겨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25일 오후 2시 40분경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일제 강점기 공장에 징용당한 여성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를 문제 해결에 일방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아울러 '과거 정대협 활동은 반일 공격 메시지에 치중했고, 이를 위해 정대협이 병약한 할머니들을 일방적 선전 도구로만 활용했지, 할머니들이 진정 원한 문제 해결에는 무관심했다'는 뜻도 이 할머니는 전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부대'라는 뜻의 정신대(挺身隊, 근로정신보국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공장에 징용한 여성 노동자를 지칭한다. 정신대가 일제의 여성 노동자 수탈 도구였던 반면, 위안부는 일제가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전쟁 범죄 피해자다.
다만 1990년대 관련 문제가 이슈화한 후 한국에서 정신대와 위안부는 대체로 구분되지 않고 사용됐다. 이 할머니는 이 같은 혼선 책임이 정대협 등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용당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할머니는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에 다녀 온 할머니(정신대)들은 밀가루 반죽이고, 맛있고 귀한 걸 넣는 속은 위안부"라며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대구의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사단법인)이 생명을 걸고 끌려간 위안부를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서 쭉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는 "30년 동안 (정대협이) 사죄해라, 배상하라고 했는데, 일본 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을 하지, (정신대와 위안부를) 섞어서 (요구하면) '사죄 안 해도 된다는 것 아니냐'"고 과거 정대협 활동을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정대협이 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를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다"며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면서 여태까지 말도 못했나" 생각했다고도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이것(정대협 활동)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은 것"이라며 그간 정대협 활동 방식에 가진 의구심을 격한 표현으로 표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아울러 정대협이 선전 활동 극대화를 위해 고령의 할머니들을 사실상 운동의 도구화했다고도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온 것으로 미뤄보면, 그간 정대협 활동에서 할머니들이 대상화되었다는 해석이 이번 사태의 중요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 초기 "제가 92년도 6월 25일 윤미향이라는 간사를 통해 29일 관련 모임이 있다고 해 어느 교회에 갔더니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100만 원씩 돈을 나눠줬다"며 "그때는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다. 왜 모금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전의 도구로 자신이 전락함에 따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이 할머니는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한 번은) 농구선수들이 농구하는 데,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그 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했고, (윤미향이) 그 돈을 받아왔다"며 "저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조금 부끄러웠다"고 언급했다.
이 할머니는 "저는 30년간 (정대협 주장이) 당연한가보다 하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증언했다"며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이 집회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불려 다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 2012년 나비기금을 출범케 한) 김복동(1926~2019) 할머니가 (노년에) 한쪽 눈이 실명이었고, 저보다도 2살 위였는데, 이 (연약한) 할머니를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녔다"며 "있을 때 잘 해야지, (생전에)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를 이용해먹었다"고 질타했다.
이 할머니는 그간 정대협의 활동에 의구심을 가졌음에도 이를 30년이 지나서야 지적한 배경으로 "제가 이것(활동)을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고 (정대협 내부적으로는) "제가 바른 말을 하면 저를 감췄"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용어를 학계가 '성노예'로 바꿔 부른 것도 자신들이 원한 바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제가 왜 성노예냐"며 "(정대협 등 운동가, 학자들에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느냐'고 하니 '미국 사람 들으라고 그런 것'이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불쾌함을 표했다.
이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렇게 팔아가면서 (정대협이) 뭘 했느냐"며 "이번에 (관련 의혹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다만 자신의 기자회견이 '위안부' 활동의 끝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이 할머니는 "저는 데모방식을 바꾸자는 거지, 끝내자는 게 아니"라며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친해지고 (역사를) 배워야 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를 향해 "아직까지 그 사람은 자기가 당당하게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당선자의 국회의원 사퇴 여부와 관련해서는 "그것은 제가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가 참석하기를 바랐으나, 윤 당선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초 기자회견은 대구 남구의 한 찻집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지나치게 몰려 회견장을 변경했다.
▲기자회견장에 몰린 취재진. ⓒ프레시안(최형락)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