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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글로벌인사이트] 코로나19와 가사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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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인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됐으나 5월 하순 현재 발병자가 10만명을 넘어 중국 발병자 수를 앞지르고 있다. 인도 정부는 2개월째 주민의 이동을 강력히 통제하는 록다운 정책을 펴고 있으나 전염병의 확산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지 공동체마다 전염병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경우 입주자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다양한 제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조치 중 가장 큰 논란이 일어나는 부분이 가사도우미의 출입 금지다.

아파트 공동체에서는 외부 가사도우미의 출입을 원칙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입주민 중에 계속해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서 입주민 간 분란이 생기고 있다. 일례로 콜카타의 한 아파트에서는 출퇴근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입주민과 이웃 간 분쟁이 발생해 경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갔다.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온라인 채팅방에도 가사도우미의 고용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논쟁으로 1시간에 100여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어떤 주민이 평균기온 30도를 웃도는 이 더위에 에어컨 없이는 살아도 가사도우미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글을 올렸는데 가사도우미 고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이런 주장에는 원칙적으로 수긍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 때문에 두 달째 방문 밖에도 나가지 않으려는 인도인 중산층이 전염의 위험성에도 가사도우미를 고집하는 이유는 인도에 깊숙이 자리 잡은 카스트의 전통 때문이다.

인도의 카스트는 바르나(Varna)와 자티(Jati)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르나는 신분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가장 상위층에 브라만이 있고 가장 하위층에 수드라가 있다. 바르나 시스템에 포함되지도 못한 계층은 달릿(Dalit)이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다. 자티는 종사하는 업종에 따른 분류로서 같은 자티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은 대대로 같은 직업에만 종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상하 관계와 직업이 행렬로 정교하게 얽혀 직업의 귀천이 정해진다.

도시화와 중산층 확산으로 현대의 인도에는 과거와 같은 엄격한 카스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의 눈에는 여전히 카스트의 벽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젊은 남녀 10쌍 중 9쌍이 가문에서 정해준 같은 카스트의 배우자와 결혼을 한다.

다른 계층의 이성과 결혼이 힘든 이유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문의 명예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로 다른 신분의 남녀가 결혼해 명예살인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한다.

가사도우미 역할은 단순히 편리함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로 여겨진다. 많은 인도의 중산층 여성이 여전히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한 것이 카스트의 전통인 것 같다.

박영선 코트라 콜카타 무역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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