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참상이 알려진 건 광주에서 활동했던 외국인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국제 사회에 최초로 학살 현장을 알린 미국 평화봉사단원 폴 코트라이트 씨도 그중 한 명인데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방한하지 못했지만, 저희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나봤습니다.
최규진 기자입니다.
[기자]
미국인 청년 폴 코트라이트는 1979년 전남 나주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듬해 5월에 방문한 광주에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폴 코트라이트/전 미국 평화봉사단원 : 군인들이 젊은이를 마구 때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본 건 그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쓰러진 시민들을 돕기 위해 계엄군이 봉쇄한 광주에 남았습니다.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영화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위르겐 힌츠페터 등 외신기자들을 안내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광주를 탈출한 뒤 미국 대사관을 찾아 진실을 알렸습니다.
[폴 코트라이트/전 미국 평화봉사단원 : 신군부가 만든 뉴스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우리의 집이고 광주가 고향이었습니다. 모른 척할 순 없었습니다.]
수십 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그는 '5·18이 가짜'라는 주장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거나,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주장이야말로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폴 코트라이트/전 미국 평화봉사단원 :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았습니다. 군대가 무자비한 일을 벌였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증언하기 위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회고록을 내기도 했습니다.
40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미국 타임지 기자 로빈 모이어의 사진도 실었습니다.
'사과할 것이 없다'는 전두환 씨에 대해 그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했습니다.
[폴 코트라이트/전 미국 평화봉사단원 : 저는 전두환 씨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5·18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전해야 합니다.]
(영상취재 : 최대환 / 영상그래픽 : 박경민)
최규진 기자 , 변경태, 손지윤, 박대권, 최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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