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가 ‘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고 했다. 이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엄청난 비밀이지만 언론이나 정부 당국자는 다 알고 있어도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성역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 전 수석은 “위안부 피해자 마케팅으로 그간 정치적 흥행을 누려온 사람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토착 왜구로 몰리면 그 후환을 아무도 감당 못 한다. 친일 프레임에 걸리면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며 “이 할머니가 보여준 용기를 정말 높이 평가해야 할 이유는 우리 사회의 성역 하나를 허물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외교관 출신인 천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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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저하자, MB 자리 박차”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12월 18일 오전 일본 교토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노다 일본 총리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제일 오른쪽 끝에 앉은 인물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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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전 수석은 통화에서 자신이 외교안보 수석으로 재직할 당시인 2012년 무렵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당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기억연대 전신) 대표를 각각 만났던 일화도 소개했다.
천 전 수석은 “2011년 12월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이 일본 교토에서 열렸는데 위안부 문제 때문에 엉망이 됐다. 회담 전날 노다 총리가 주최한 소규모 비공식 만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양국 관계 미래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꼭 좀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며 “분위기가 괜찮아서 ‘그만하면 노다 총리가 알아들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공식회담에서 노다 총리가 다른 소리만 하는 것을 보고 이 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이후 한일관계가 내리막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소원해지자 노다 총리는 관계 복원을 위해 이듬해 봄, 당시 사이토 관방부장관을 특사 자격으로 한국에 급파했다. 천 전 수석은 “사이토 부장관이 일본이 구상하는 위안부 문제 해법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다.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를 한분 한분 찾아뵙고 일본 총리대신의 사과 친서와 일본 정부 보상금을 직접 전달한다는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다만 천 전 수석은 “일본이 국가 예산으로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일본이 국가책임을 인정했다’고 해석하고 국민에게 설명하겠다. 이를 추후 일본이 ‘국가책임을 인정한 게 아니다’라는 소리를 하면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하자 사이토 부장관이 아주 난처해 하며 확답을 하지 못하고 (논의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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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안에 윤미향 곤혹”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지난 3월 11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발언하는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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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전 수석은 사이토 부장관이 돌아간 이후 일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당시 윤미향 정대협 대표를 각각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당시 “다수의 할머니는 살아있는 동안에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다 받아내면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되면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고 싶어하는 인상이었다”는 게 천 전 수석의 설명이다.
반면 윤 대표는 달랐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윤 대표에게 사이토안을 설명하고 혹시 그런 방향에서 타협이 되면 정대협이 환영 지지는 못하더라도 극렬한 반대는 하지 말아달라. 위안부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이보다 나은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며 “그러자 윤 대표 얼굴에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제가 구상하던 해법이 할머니들에겐 나쁠 게 없지만, 정대협으로선 이제 문 닫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대협엔 사형선고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천 전 수석은 “당시 타결 직전까지 간 한일 간 합의가 깨진 이유는 정대협과 외교부 때문은 아니다”라며 “일본 측이 ‘국가책임을 부정하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깨진 것이다. 당시 노다 내각은 총선을 앞두고 이미 운명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국내의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결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16일 유튜브 채널인 ‘천영우 TV’에서도 언급됐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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