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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팩트체크] 미국문서에 5·18 당시 인민재판·처형 기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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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와 일부 네티즌 미국 외교문서 내용이라며 소개

80년 5월25일 美문서에 관련 기술 있으나 다음날 문서는 "확인안돼"

5·18연구자 "궐기대회는 있었지만 인민재판·처형은 말도 안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지만원 씨 등 일부 인사들은 이른바 '북한 특수요원 개입설'을 비롯해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특히 최근 5·18 관련 미국 외교문서 공개를 계기로 지 씨 등은 인민재판 및 처형설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당시 항쟁 참가자들이 과격화한 나머지 인민재판과 처형을 자행했다는 내용이 미국 외교문서에 적시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연합뉴스는 미국 국무부가 정보자유법(FOIA)에 따라 운영하는 자국 정부 문서 공개 사이트를 통해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검증했다.

1980년 5월 25일 작성된 '한국 모니터링 그룹 상황 보고 제7호'(KOREA MONITORING GROUP SITUATION REPORT NUMBER 7)에는 "광주 상황은 보다 암울한 국면으로 들어섰다. 온건한 시민위원회는 상황 통제력을 상실했고, 급진파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민재판소가 설치됐고 몇몇 처형이 이뤄졌다"고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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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가 5·18 당시 생산한 '한국 모니터링 그룹 상황보고 제7호'
"5·18 당시 인민재판소가 설치됐고 몇몇 처형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무부 정보공개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당시 미 국무장관이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로 보낸 이 문서만 보면 지만원 씨 등의 주장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직후 작성된 미 외교문서는 이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것임을 말해준다.

바로 다음날인 1980년 5월 26일 미 국무장관이 제네바 대표부로 보낸 '한국 상황보고 제8호'(KOREA SITUATION REPORT NUMBER 8)'는 "반란 세력이 인민재판소를 설치해 처형을 자행했다는 앞선 보고는 완전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며 해당 내용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5·18 당시 생산한 '한국 모니터링 그룹 상황보고서 8호',
"반란세력이 인민재판소를 설치해 처형들을 자행했다는 앞선 보고는 완전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며 해당 내용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무부 정보공개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같은 1980년 5월 26일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한국 상황 보고'(KOREAN SITUATION REPORT, MAY 26) 문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미국대사관이 80년 5월 26일 미 국무부로 보낸 한국상황 보고서
"인민재판소와 처형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그 내용 다음 등장하는 괄호 안에는 "이들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니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국무부 정보공개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문서는 '광주 상황'을 소개하면서 "5월 25일 일요일의 과정에서 광주의 사태는 급격히 악화 쪽으로 틀었다"며 "인민재판소와 처형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바로 다음 등장하는 괄호 안에는 "이들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니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결국 미국 외교당국이 인민재판 및 처형과 관련한 5월 25일의 최초 보고에 대해 자체 확인을 거친 '정보' 수준이 아님을 인정하고, 외교관들에게 주의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지만원 씨 등은 인민재판 및 처형 관련 내용을 소개한 인터넷 게시물에서 미국의 1980년 5월 25일 자 외교문서만 소개하고, 그것이 확인된 정보가 아님을 지적한 5월 26일 자 외교문서들은 소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5·18 연구자들은 인민재판과 처형은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인민재판이라 함은 한국전쟁때 북한 인민군이나 좌익들이 사람들 앞에서 특정인의 생사여탈을 결정한 것과 같은 것인데, 5·18때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5·18 당시 시민들의 인적 청산 요구는 '전두환 처단'으로 모여 있었다고 소개한 뒤 "5·18 당시 궐기대회가 열렸고 거기서 전두환을 형상화한 허수아비 화형식이 진행되긴 했으나 인민재판과 처형은 없었다"며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노 교수는 또 "상무대(육군 교육시설)에서 열린 협상에 나섰던 (시민 측) 대표단이 군의 요구대로,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무장해제를 하자고 하자 시민들이 그들을 연단에서 끌어내린 일은 있었고, 시민들이 당시 군의 '프락치'(정보요원)를 잡았다가 몇 대 쥐어박고 풀어준 일과 간첩 용의자를 보안대에 넘겨준 일 등은 있었지만 인민재판과 처형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신군부 세력이 무력진압의 '명분'을 조작할 목적으로 미국 측에 거짓 정보를 흘리는 과정에서 인민재판 및 처형을 언급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송선태 5ㆍ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조사를 해서 그런 부분도 객관적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나 선행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의거하고, 신 군부가 미국 측에 보낸 여러 그릇된 정보들을 참고하면 당시 광주항쟁을 지나치게 북한과 연계지으려고 하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1980년 5월 16일 자 계엄회의록을 보면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학생들 시위 방식이 베트콩 방식이며 주의주장은 공산당식'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고 소개한 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인민재판 및 처형설 유포는) 지극히 정교하게 짜인 각본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만원 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광주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씨가 2월 1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 법정 입장을 위해 몸 수색을 받고 있다. 20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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