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피해 할머니들과 내용 공유 안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 답변뿐
의혹엔 “친일세력 공격” 논점 돌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439차 정기 수요집회가 13일 서울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렸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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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남산 자락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이곳에 설치된 대형 조형물 ‘대지의 눈’ 벽면에는 ‘피해자 할머니 247명’이라는 제목 밑에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실제 새겨져 있는 이름은 246명. 맨 밑줄의 이름 하나가 지워져 있었다. 까맣게 보수해 놨지만 파낸 자국이 육안으로도 확인됐다.
자신의 동의 없이 이름이 들어간 것을 뒤늦게 안 A할머니가 추운 겨울 새벽에 몰래 와서 자신의 이름을 파낸 흔적이었다. 〈중앙일보 5월 13일자 5면〉
247명의 명단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일괄적으로 넘긴 것이었다고 한다. 조형물에 새겨진 할머니의 이름은 실명을 조금 바꾼 가명이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알아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 관계자도 “가명이었더라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넣으면 안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추진위 측은 본인 확인 절차는 정대협이 모두 거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망치와 끌로 자신의 이름을 쪼던 할머니의 심정이 어땠을지, 그러다 지구대에까지 끌려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히는 심정은 또 어땠을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 사건의 본질은 ‘왜 피해자 당사자의 생각은 묻지도 않았느냐’다. ‘왜 그들을 목소리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취급했느냐’다. 윤미향(전 정대협 대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자신에게 제기되는 비판을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2015년 12·28 합의 전에 일본이 낼 10억 엔에 대해 윤 당선인은 사전에 알았다고 주장한 것도 비슷한 문제 제기다.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았다면 조치를 취했어야 하고, 그러기 힘든 상황이었더라도 적어도 이 할머니 자신을 비롯한 피해자들과는 미리 내용을 공유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미향.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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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에서 주체는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 전날 정대협이 법률자문위원회까지 열어놓고(11일 정의기억연대 기자회견 자료) 정작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피해자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제가 국회로 간다는 것을 (이 할머니가) 갑자기 알게 됐다. 할머니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라고 했고, 저는 국회에 가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신뢰하지 못하셨다. 결국 제 책임”이라며 “할머니가 서운함을 갖게 된 이유”라고 했다(12일 JTBC 출연). 이 할머니는 피해자를 존중하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윤 당선인은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식이다.
정의연 기부금 문제도 그렇다. 기부자들의 기본 인식은 피해 할머니를 돕자는 것이다. 특히 정대협이 2015년 위안부 합의 뒤 할머니들이 굴욕적인 일본 돈을 받지 않도록 시민 모금으로 100억원을 만들자고 주장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기부금 규모는 2015년 약 5억원에서 2016년 12억원대, 2017년 15억원대로 크게 늘었다. 일종의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이 할머니는 그러니 이 돈을 피해자를 위해 잘 썼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친일·반일이 아니다. 조국은 더더욱 아니다. 본질은 피해자 중심주의다. 이 할머니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정의를 13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명쾌하게 정리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윤 당선인은 이제 이 질문에 답하면 된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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