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박희승 교수, 18년 간 스승의 가르침 정리…"'보은'의 마음 담았다"
"기억력 쇠퇴한 고우스님, 두 살 아래 적명스님 입적에 큰 충격"
고우스님과 제자 박희승 교수 |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불교인재원의 박희승 교수에게 고우스님은 희망이 꺾였던 시절 한 줄기 빛이 됐던 존재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무원이었던 그는 2002년 종단 내분에 든 심적 괴로움에 개인적인 어려움마저 겹쳐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고 한다. 불교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회의까지 들었고, 이에 답을 찾지 못하면 진로까지 바꿀 생각까지 했다.
박 교수는 번뇌를 풀고자 평소 믿었던 스님께 산중 선지식을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렇게 추천받은 스님 중 고우스님은 단연 처음이었다고 한다.
먼 길을 찾아가 친견한 스님은 그를 환한 미소로 맞았다. 장시간 스님께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냈으나 스님은 물음 하나하나를 버리지 않고서 속 시원한 답을 돌려줬다. 불교와 삶에 관한 의문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8년간 박 교수는 고우스님 곁을 찾아 가르침을 구하고 따랐다.
스승의 법문을 꼼꼼히 기록해온 그는 스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오랜 시간 제자에게 전해진 스승의 법문은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어의운하·320쪽)이라는 책 한 권에 담기게 됐다.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박 교수는 "2002년 처음으로 고우스님을 찾아뵙고 6시간 동안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마음이 편해지더라"며 "바로 이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참 운이 좋았다"고 스승과 첫 인연을 떠올렸다.
20대 중반 경북 김천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한 고우스님은 관웅스님에게서 기신론을 배우고, 고봉스님에게서 금강경을 수학하는 등 대강백(大講伯)들로부터 경전을 익혔다. 이후 당대 선지직인 묘관음사에서 첫 안거(安居) 수행을 한 뒤로 평생 참선의 길을 걸어왔다.
1968년에는 도반(道伴)들과 함께 문경 봉암사에 들어가 선원을 재건하는 '제2 봉암사 결사'를 이뤘다. 동시대 선승으로 꼽혔으나 지난해 산중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적명스님과는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는 경북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 주석하고 있다.
고우스님을 불교의 길로 이끈 것은 폐결핵이었다.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절을 찾아 출가했고, 불교 경전을 만나며 새롭게 눈을 떴다. 강원에서 수학한 뒤 선방에서 참선에 매진한, 교학과 수행을 겸비한 선지식으로 평가된다.
박 교수가 정리한 스님의 법문집을 관통하는 가르침은 중도(中道)다. 나와 너, 빈부, 갑을, 노소, 노사, 좌우, 남북, 여야 등 일상에서 흔히 빠질 수 있는 이분법 함정이나 극단의 집착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을 걷는 것이다.
스님은 이런 중도의 길을 가는 가장 강력하고 빠른 답으로 참선의 길을 제시하고, 그 전제로는 '정견'(正見)을 강조한다.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들이 그랬듯 바른 세계관, 바른 안목을 세우고 참선을 통해 깨달음으로 향하는 과정이야말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법문집은 부처님이 누구인지부터 알기 쉽게 시작한다"며 "스님의 말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활법문'으로 쉬운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생활법문의 대표적인 사례는 '도 닦으며 장사하는 법'을 들 수 있다.
보통 식당 주인은 가게를 찾는 손님을 돈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손님을 돈이 아닌 자신과 가족,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은인으로, 부처님으로 생각하며 맞이하면 장사가 잘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법문을 들었던 보살은 한 달 뒤 스님을 찾아와 '장사가 대박'이라며 크게 고마워했다고 한다.
박 교수가 스승의 법문집을 펴내게 된 데에는 수년 전부터 스님의 건강이 눈에 띄게 쇠약해진 탓도 크다.
1937년생으로 올해 만 83세인 스님이 경증인지장애로 기억력이 급속히 약해지며 가까웠던 이들까지 멀리하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한다.
더는 그의 가르침을 나누는 일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스님의 법문을 복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경도인지장애로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어요. 두 살 아래였던 적명스님이 먼저 떠난 소식을 듣고서 큰 충격을 받으신 거 같았습니다. 이제 더는 법문을 들을 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책으로라도 말씀을 엮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교수는 스님의 법문집을 두고서 18년간 가르침을 받기만 했던 제자가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보은(報恩)이다.
그는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법문집은 제가 18년간 스님의 법문을 들은 데 대한 보은의 의미"라고 말했다.
박희승 교수 |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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