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8200원 내고 월 109만~203만원 실업급여
고용보험 가입 문호 열었는데, 가입율은 고작 0.2%
기피, 소득 파악 애로 등 산적한 과제 풀 수 있나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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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전 국민 고용보험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처럼 전 국민이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용보험은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고용보험 상의 '전 국민'은 골프장 캐디나 대리운전기사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자영업자 같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가입하지 않는 사람을 고용보험의 우산 속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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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고용보험 확대 고민…자영업자 적용 해법은 못 내놔
고용보험의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은 전 세계가 고민 중인 사안이다. 4차 산업혁명이 확산하면서 기업에 고용된 사람보다 프리랜서와 같은 1인 사업자가 크게 불어나고 있어서다.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보가 시급해졌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국제 기준으로 따지면 자영업(self-employed) 범주로 분류된다. 세계 각국이 자영업자에 준해서 법을 적용한다. 다만 독일은 '유사근로자'라는 개념을, 프랑스는 6개 직종의 특고종사자를 지정해 노동법적으로 보호한다. 그렇다고 고용보험까지 모두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1월 8일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사회보장 접근 권고'를 통해 회원국에 모든 근로자와 자영업자에게 충분한 사회보장 혜택을 주도록 권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치면서 이 권고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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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국가, 사업장에 고용된 근로자 대상 보험 운용
그렇다고 이들을 어떻게 고용보험으로 끌어들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일본 같은 일부 국가에선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적용 여부는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휴업·폐업하는 매장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지난 3월 31일 오후 중구 명동 음식점에 빈 테이블이 놓여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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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자영업자 포함 모든 취업자에 정부가 실업급여 줘…보험료 없어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는 '피용자 보험'이다. 사업장에 고용돼 일하는 사람만 대상으로 한다는 얘기다.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자 보험' 성격의 실업급여 시스템을 운용 중인 곳은 호주 정도다. 호주에는 우리처럼 매달 내는 보험료가 없다. 고용보험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누구나 실직하면 실업급여를 받는다. 취업자로 확인되면 정부의 재정으로 지급한다. 일종의 실업부조 확장판이다.
한국도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취업자 보험'이 아니라 '피용자 보험'이다. 이 틀을 유지하는 이상 자영업자를 고용보험에 끌어들이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과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OECD '2017 한눈에 보는 기업가 정신') 손쉽게 창업하고 폐업하기를 반복한다. 자영업자 생존율은 30%도 안 된다. 정부의 구상대로 전체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폐업 뒤 실업급여를 주는 시스템을 의무화하면 자영업자의 70%에게 실업급여를 줘야 할지도 모른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해 9월 9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일자리 안전망 강화를 위한 국정과제 관련 법률안 등 국무회의 의결'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고용부는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 '고용보험법 시행령' 및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형' 일부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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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3년 가입하면 총 29만원 보험료 내고 436만원 실업급여 수령
더욱이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이 안 된다. 그래서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꺼낸 카드가 기준보수다. 소득에 따라 정부는 1~7등급으로 기준보수를 분류했다. 자영업자가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고, 해당 보수의 2.25%를 보험료로 낸다. 가장 낮은 등급인 1등급(월 182만원)을 선택할 경우 보험료는 월 4만950원이다. 고용보험료를 국가(두루누리)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기 때문에 실제 납부액은 훨씬 적다. 예컨대 서울 소재 자영업자는 국가나 지자체 지원금을 제하고 월 8200원만 내면 된다. 이걸 내면 월 109만2000원을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에 따라 4~7개월을 받게 된다. 3년간 가입했다고 치면 총 29만5200원을 보험료로 내고, 총 436만8000원(4개월 치)을 실업급여로 수령한다는 뜻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장이 있는 근로자는 재취업의 어려움 때문에 이직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언제든 폐업하거나 일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창업과 폐업이 잦고 자유로운 점 때문에 모럴 해저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 교수는 "따라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정교하게 구비해야 직장인과의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그래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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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가입하면 소득 노출에 건강·국민·산재보험 청구서 함께 날아들어
직장인보다 혜택이 훨씬 많은데도 정작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을 꺼린다. 2012년부터 원할 경우 가입(임의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었지만 가입률이 0.2%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는 고용보험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청구서가 동시에 날아든다. 소득과 재산이 노출된다. 예컨대 건강보험의 지역가입자로 피부양자이던 사람이 자신이 택한 기준소득에 비례해서 각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여기에다 실업급여를 받는 요건도 직장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폐업 이유로 3개월 월평균 매출액이 20% 이상 감소하거나, 3분기 연속 적자와 같은 매출 감소를 입증해야 한다. 영업정지 등에 따른 폐업은 수급자격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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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소득공제에 목돈 마련도 쉬운 '노란우산공제'로 몰려
이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차라리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노란우산공제'(중소기업중앙회 운영)를 택한다.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하면 월 5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저축하고, 복리로 적립된다. 저축금액에는 소득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자영업자가 폐업하거나 사망하면 일시금 또는 분할로 수령할 수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노동시장에서의 직종이 4차 산업혁명으로 다변화하는데 기존의 고용보험 틀을 고집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직종 등에 맞춰 고용보험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사회보장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4차 산업 확산에 따른 사회보험 확장을 오래전부터 독일 등 일부 선진국이 논의해왔다"며 "그러나 그런 나라조차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보장책에 대한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한 뒤 고용보험 확장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U 국가의 자영업자 실업급여, 산재보험 적용 현황 (2017년 현재) 자료=EU 집행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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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 상당수도 자영업자는 실업부조나 임의가입, 적용 제외 대상
실제로 EU 국가 가운데 자영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전면 적용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정도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독일 등은 없다. 실업부조 형태로 부분 적용하는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그리스, 에스토니아 등이다. 실업부조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실업부조제다. 한국처럼 임의가입 형태로 운영하는 국가는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등이다.
하마구치 케이이치로(濱口 桂一郎)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 연구소장은 "EU를 보면 작은 나라에서 자영업자를 위한 실업급여가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EU의 권고를 고려하면 코로나19에 대한 정책 대응의 일환으로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JILPT 긴급칼럼)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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