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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 치욕 동상' 제작한 정한봄씨 "법 대신 민심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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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전씨 집 앞에 세우고 싶어…시민의 분노를 알아야"

연합뉴스

5·18유족, '전두환 치욕 동상' 때리며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 재판이 열리는 27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5·18유족들이 전씨의 출석을 앞두고 이른바 '전두환 치욕 동상'을 때리고 있다. 2020.4.27 iny@yna.co.kr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있더라도 민심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손과 발이 묶여 무릎을 꿇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형물이 올해 4월 27일 전씨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 앞에 등장했다.

하얀 상복을 입은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씨 조형물의 뺨을 때리며 지난 40년의 울분을 토했다.

이 조형물을 제작한 건 경기도 파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한봄(65) 씨.

그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람도, 광주가 고향인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단지 "전두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분노하고 혐오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2·12군사반란부터 5·18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박종철·이한열 사건 등 전씨의 수많은 악행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이 조형물 제작을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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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조형물' 제작한 정한봄씨
[정한봄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씨는 "전씨의 권력욕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사죄는커녕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며 "전씨가 법의 심판을 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돼 다른 형태로라도 응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소 정씨와 교류하던 노무현 대통령 경제수석 출신 김태동 교수와 공직자 출신 류현선씨가 선뜻 제작비를 보탰다.

특히 류씨는 암 투병 중이었지만 흔쾌히 제작비를 지원해줬다.

이들의 도움으로 정씨는 지난해 6월부터 조형물을 만들어줄 작가를 찾아 나섰다.

경기·강원·전북 등지를 발로 뛰어다녔지만, 제작하겠다는 작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제작을 해보자던 작가들도 일주일 만에 못 하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정씨는 "이 조형물을 만들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더욱이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작가들이 '상징성'을 강조해 달라는 정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두 달간의 수소문 끝에 양형규 작가를 만나 지난해 12월 조형물을 완성했다.

당초 전씨가 부적절하게 대통령에 오른 날짜인 8월 27일에 맞춰 공개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제작 날짜를 맞출 수 없어 12·12 군사 반란 일인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다.

누구나 조형물을 때릴 수 있도록 한 이 조형물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쏟아냈고, 2주 만에 조형물의 머리 부분이 부서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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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갇힌 '전두환 치욕 동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씨는 "조형물은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만들어져 절대 사람의 손이나 발로 부술 수 없다"며 "각목 등 도구로 내리쳐 부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 하는 작품이 과격한 표현으로 망가진 것은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수리를 마친 조형물은 전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는 광주지법 앞에 설치됐다.

정씨가 조형물을 제작할 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다.

전씨의 재판이 끝나자 5·18 최후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 설치됐다.

정씨는 5·18단체가 조형물을 잘 관리해 줄 수 있다면 기증하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언젠가 한 번은 전씨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 앞에 이 조형물을 세워두고 사죄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싶다는 게 정씨의 바람이다.

시민의 분노를 전씨가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정씨는 "전두환을 응징하지 못하고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은 산 자의 부끄러움"이라며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끔 책 속에 있는 역사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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