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소재 원유 생산업체 헤스 코퍼레이션은 원유 생산량의 80%에 대한 헤지 계약을 맺은 덕에 연말까지 이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원유 시장에서 헤지 계약이란 유가가 일정 기간(통상 1~3년) 동안 사전에 합의한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은행과 거래 상대방이 그에 따른 차액을 부담하는 계약이다. 즉, 미리 정한 가격에 원유를 내다 팔 수 있도록 은행과 석유회사들로부터 일종의 ‘풋옵션(팔 권리)’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유가 하락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미 원유업체 헤스는 원유 생산량의 80%에 대한 헤지 거래를 맺어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 헤스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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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는 하루 원유 생산량 20만배럴 가운데 13만배럴은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 배럴당 55달러, 2만배럴은 브렌트유 배럴당 60달러에 팔 수 있도록 헤지해놨다. 지난달 30일 기준 WTI는 배럴당 15달러, 브렌트유는 22.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 회사는 헤지 전략을 마련한 덕에 높은 가격에 원유를 팔아 수익을 내고, 엑손모빌이 주도하는 하루 80만배럴 규모 가이아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헤스 최고경영자(CEO)인 존 헤스는 "올해 원유 생산량의 80%를 헤지해놨고 탐사 예산을 삭감해 저유가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 전략은 유가가 오르면 손실을 입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유가 하락세가 계속되는 환경에서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헤지 전략은 만능통치약이 아니지만 개별 원유업체의 단기 수익에는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IHS마킷에 따르면 미 원유업체 3분의 1가량이 배럴당 52달러에 원유를 팔 수 있도록 헤지해놨다.
원유 헤지에 성공한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감산에 돌입한 대다수 원유업체와 달리 생산을 늘리는 추세다. 텍사스 소재 사우스웨스턴은 에너지는 올해 원유 생산량을 25%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럴당 62달러에 헤지 계약을 체결한 케언 에너지도 올해 하루 생산량 2300배럴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밖에 오클라호마 소재 라레도 페트롤리엄이 배럴당 59달러, 덴버 소재 SM에너지는 배럴당 58달러, 툴로우 오일이 배럴당 57.2달러에 헤지 가격을 설정해 수익을 내고 있다.
헤지 거래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국가도 등장했다. 최근 멕시코는 재무부의 원유 헤지로 1500억 페소(약 7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재정의 상당 부분을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멕시코는 유가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꾸준히 헤지 거래를 해왔다. 올해는 배럴당 49달러에 헤지 가격을 설정했다. 블룸버그는 멕시코 재무부가 풋옵션 매입에만 약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썼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돈을 번 기업과 국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유가가 올해 들어 약 70% 폭락하면서 대다수 원유업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각국의 이동제한과 공장 폐쇄 등 ‘셧다운’ 조치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글로벌 원유 저장 탱크가 가득 차는 이른바 '탱크톱(tank top)' 공포도 커지고 있다.
수익성이 나빠진 원유업체의 파산보호 신청도 잇따르고 있다. 미 셰일기업 화이팅 페트롤리엄이 이달 초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 신청을 한 데 이어 지난 26일(현지시각)에는 미 원유 시추업체 다이아몬드 오프쇼어 드릴링이 파산 수순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내년까지 1000여개 원유업체가 파산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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