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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엄마 근무환경탓 태아 질병 생겼다면 '산재'…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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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신생아 선천성 질환을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첫 인정. 모체와 태아를 '본성상 단일체' 취급해 산모가 출산아의 요양급여 수급 권리 상실하지 않아.

CBS노컷뉴스 김중호 기자

노컷뉴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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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에게 건강상 별다른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신생아가 산모의 업무 환경 때문에 선천적인 질병을 안고 태어난 사실이 입증된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보고 산모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대법원이 신생아의 선천성 질환을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첫 판례여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 등 4명이 "요양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은 지난 2010년 출산한 아이 4명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나자 임신 초기 유해한 요소에 노출된 탓에 신생아가 병에 걸리게 됐다며 요양급여를 청구했고, 근로복지공단이 청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당시 제주 의료원은 노동 강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했으며 고령인 입원환자들이 쉽게 알약을 복용하도록 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알약을 가루로 분쇄하는 작업을 해왔다. 분쇄작업을 거친 알약 중에서는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의 복용이 금지된 약들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산모에게 유독한 약물을 흡입해 신생아의 선천적 질병이 유발됐을 가능성이 컸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이나 질병만을 의미한다며 산모들의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 대상인 근로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며 태아에게 미치는 어떤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 귀속된다"며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여성근로자가 임신 중 수행했던 업무로 인해 신생아의 건강을 해치게 됐다면 이는 곧 여성근로자 당사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설사 신생아의 질병이 산모의 업무상 재해로 인해 발병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산모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산모에게 요양급여를 지급해서는 안된다며 근로복지공단 측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1심과 2심의 다른 결론을 받아든 대법원은 1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를 이유로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질병)과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모체와 태아를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해 산모가 출산아의 질병 등에 대한 요양급여 수급 권리를 상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산재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의 취지, 헌법에 적시된 여성근로자 보호와 모성 보호의 취지 등을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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