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토킹 범죄 583건…5년만에 두배 증가
스토킹 범죄, 현행법상 '경범죄' 해당…10만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
여성단체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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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스토킹 범죄 피해 사건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스토킹이 경범죄로 분류되기 때문에 처벌 수위 역시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여성계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은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조 씨는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가해 남성 A 씨는 1년 전부터 사업장에 나타나 갖은 욕설과 고함을 치고 있다"며 "공권력은 저와 주변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이 사람을 잡아 가두지도, 일시적으로 구류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 씨가 저와 주변인에게 갖은 욕설과 고함, 협박 및 모욕을 해 제가 형사고발을 했다. 경찰에 세 차례 신고했으나 벌금 5만 원, 사실상 훈방 조치했다"라면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현행 스토커 처벌법이 너무 경미하고 미약한 처벌을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스토킹 범죄에 관한 처벌을 국회 차원에서 강력범죄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스토킹 범죄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3년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583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3년 312건, 2014년 297건, 2015년 363건, 2016년 557건, 2017년 438건, 2018년 544건 등으로 조사됐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스토킹 범죄 발생 건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문제는 스토킹 범죄가 경범죄처벌법상의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되는 데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41호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에 한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 건수당 평균 벌금액은 9만4천여 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 수위가 낮은 데다 해당 조문의 요건에서 벗어난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어려워 '스토킹 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99년부터 20년간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으나,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렇다 보니 입법부를 향해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이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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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이해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앞서 지난해 MBC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스토킹 방지법이 없다. 기껏해야 (가해자에) 벌금형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 정도를 주면 다시 돌아다니니까 다시 시도하거나 보복하면 그다음에는 누가 막아줄 거냐"며 "외국의 경우 스토킹은 중범이다. 영미법 국가는 만약에 이런 식으로 굉장히 극도로 공포심을 느낄 만한 성범죄 목적이 추정되는 이런 스토킹 경우 징역형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의 경우 스토킹을 별도 범죄로 분류하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스토킹 금지 법안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50개 주에서 스토킹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스토킹 가해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영국은 1997년 '괴롭힘 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독일은 2007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상대 동의 없이 접근하거나 반복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고 있다. 일본 또한 2000년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여성단체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피해자가 안전하게 자신의 피해 상황을 밝힐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측은 "(스토킹 범죄는) 단순히 비뚤어진 애정이나 관심, 사이코패스의 잘못이나 범행이 아니라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자주 발생하는 범죄 유형이며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친밀한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협박 방식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고 있고 다른 성폭력 가해행위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토킹이 '폭력적'이고 '특정한'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고, 입안자들 또한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심각성이라든가 대응의 시급성이 주제에서 밀려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상담소 측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단순히 경범죄가 아닌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사회구성원들이 인지하고 법제도 적으로 벌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피해자도 이후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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