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표정ㆍ발언 없이 법정 향해…이번에도 사과 없을 듯
1995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골목성명’을 발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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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복적 행위” (1995년 12월 2일, 연희동 자택 앞 ‘골목성명’)
“이거 왜 이래~”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법 들어서며)
“…” (2020년 4월 27일, 광주지법 들어서며)
국민 앞에 선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태도는 25년 동안 몇 차례 바뀌었습니다.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7일 광주로 향한 전씨의 태도는 앞서 연희동 자택 앞에서 벌였던 이른바 ‘골목성명’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 동안의 장면들을 짚어보겠습니다.
◇측근 대동하고 “검찰에 협조 않겠다” 버텼던 ‘골목성명’
1995년 12월 2일 오전 9시, 검찰 12ㆍ12 및 5ㆍ18 사건 특별수사본부가 전씨를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 통보했던 당시 그는 측근들을 대동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취재진과 국민 앞에 섰죠. 이어 준비해 온 원고를 들고 기세 등등하게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5ㆍ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수사를 ‘정치보복적 행위’로 규정, 조사에 불응한 것인데요. 이후 전씨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떠납니다. 소환 불응에 검찰은 당일 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 법원이 발부하면서 이튿날 전씨는 구속됐죠.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 씨의 내란 및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에 더해 추징금 2,205억 원의 확정 판결을 내리는데요.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추징금은 면제 받지 못 했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해 온 주옥 같은 말들에 국민적 공분이 일기도 했죠. 관련기사☞ “자네가 돈 내주라” 국민 공분 산 전두환의 말말말
◇사자명예훼손으로 다시 법정에…‘발포명령’ 질문에 짜증 내
2019년 3월 11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죄로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에 들어서며 취재진의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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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1일, 전씨는 다시 국민들 앞에 서게 됩니다. 2017년 쓴 자신의 회고록에 5ㆍ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 고(故) 조비오 신부를 두고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라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것을 조 신부의 유가족이 고소하면서입니다.
검찰은 1년의 수사 끝에 ‘전 씨가 허위사실로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8년 5월 그를 재판에 넘겼죠. 1996년 비자금 관련 재판 이후 23년 만에 다시 피고인석에 서게 된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때 전 씨는 연희동 자택에서 측근의 부축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나와 차를 타고 법정으로 향했는데요.
광주지법에 내려서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기자의 말에 “이거 왜 이래~”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역정을 내고, 이후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는 답 없이 법원으로 들어가는 등 불편한 심기를 역력히 드러냈습니다. 귀가 길에는 취재 및 경호 인파에 에워싸여 떠밀리며 겨우 차량에 탑승, 황급히 자리를 떠났죠.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굴욕적인 퇴장이었을 듯 한데요.
이 한 차례의 출석 이후 전 씨는 ‘알츠하이머 투병’ 등 건강상 이유를 들며 불출석사유서를 내고 재판에 나오지 않아왔습니다만, 멀쩡한 모습으로 강원 홍천에서 골프를 치고 신군부 출신들과 12ㆍ12사태를 기념하며 오찬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비난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재판부가 바뀌었고, 새로운 재판부는 본인 확인 인정신문을 위해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고 전씨를 불렀죠.
◇다시 국민 앞에 선 전두환…‘마스크 뒤 침묵’ 속내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홍인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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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8시 25분쯤, 그렇게 전 씨는 또 한 번 국민 앞에 서게 됐습니다. 광주로 출발하기 위해 연희동 자택을 나온 그는 부인 이순자(81) 씨와 측근의 손을 붙들고 자택에서 나왔는데요. 마스크를 쓴 채 이번에는 아무 표정 없이, 아무 말도 없이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법원에 도착해서도 질문을 하려는 기자들의 마이크를 살짝 밀어내는 동작 외에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부답으로 법정을 향했죠.
그의 자택과 법원 앞에는 5ㆍ18 민주화 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 수십 여명이 모여 사과와 구속 재판, 불법 재산 환수 등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 씨가 죄수복을 입고 묶여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무릎꿇은 전두환 동상’을 법원 앞으로 옮겨두기도 했습니다.
전 씨는 이들의 외침을 들었을까요? 25년 전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오늘은 마스크 뒤로 어떤 말을 삼켰을까요. 잘잘못은 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결국 이번에도 국민들은 전 씨가 역사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보지 못 할 듯 합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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