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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축은 세상과 호흡해야…경동교회엔 겸손과 고요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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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 대형교회들의 건축을 보면 교회가 세상을 선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울리지 않는 외국 양식을 가져와 높게만 지은 건물을 보면 흡사 교회가 최고여야 한다는 고집을 보는 것 같아요." 예배당 건축기행서인 '한국 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곰출판 펴냄)를 펴낸 주원규 목사(45·동서말씀교회)는 대형교회 건축에 대한 비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교회는 이제 내용적으로든 건축적으로는 대중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이번에 펴낸 책은 상징적인 교회건축물 22곳을 모델로 한국 개신교의 공과(功過)를 분석한다.

책 제목에 나오는 '이미'는 한국 교회가 일구어낸 공을, '아직'은 과를 의미한다.

"한국 개신교회는 성당과 달리 제의보다는 대중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장단점이 있죠. 신도들을 제압하는 장소가 아닌 신도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를 지향했다는 것은 분명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내용을 채우기보다는 교인 수 늘리기에 치중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건물이 비대해지기 시작했고요."

주 목사는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공대 전기과를 나와 다시 신학대를 마치고 목사가 됐다. 그 중간에 건축평론으로 건축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평론가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장편소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소설가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MBN 등 주요 방송사에 시사평론가로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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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샤먼의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목사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철학을 가지고 살다 보니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설과 평론을 쓰게 됐습니다."

주 목사의 책에는 교회건축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칭찬도 들어 있다.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압구정동 소망교회 등은 그가 손꼽는 성공한 예배당 건축이다.

"1981년 김수근 선생이 만든 경동교회는 어머니의 자궁, 혹은 기도하는 손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교회건축에서 가장 중시하는 출입문을 큰 길가에 두지 않고 뒤 편에 둔 것도 마음에 들어요. 도심의 번잡함을 벗고 겸손하게 고요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소망교회는 자본주의의 첨병인 압구정동 한복판에 효율보다는 공간 여백과 미학을 강조한 단층건물로 지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어요."

주 목사는 개신교가 대중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몇 가지 문제와 교회건축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외형 경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엄청난 건축비가 들어간 대형교회들을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한다.

"생각해보세요. 작고 가난한 시골 교회라면 세습 문제가 생겼을까요. 교회가 거대해졌기 때문에, 영성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세습 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세습 문제의 뿌리에는 교회의 대형화라는 현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 목사는 한 세기를 훨씬 뛰어넘는 개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교회건축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 역시 교회의 성장주의가 만들어낸 과오라는 것. 오래된 교회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미학도 소통도 없는 사생아 같은 건물들이다.

"교인 수가 많은 교회가 추앙받으면서 오래된 교회 건물들이 허물어졌습니다. 인기 있는 목사가 신도들을 끌어모아 큰 건물을 짓는 것이 한국 교회의 패턴으로 굳어진 것이죠. 안타깝습니다. 전통과 철학이 있는 교회건물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주 목사의 책에는 유명하고 큰 교회만 나오는 건 아니다. 작지만 상징적인 경북 경산 무학로교회 같은 곳도 분석한다.

"무학로교회는 승효상 선생이 설계했는데 교회건물이 '묵상' 그 자체입니다. 교회에 조명이 없습니다. 자연 채광만이 교회를 비춥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얻어내는 겸손함이 있죠. 보통 교회를 지을 때 현재 교인 수의 2배를 가정해서 짓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일부러 작게 지었습니다. 다 상징적인 이유가 있는 거죠."

주 목사가 소설가로, 시사평론가로, 때로는 전기기술자로 일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감리교 소수 교단에 속한 그는 목사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는 자기가 벌어서 충당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개신교 내부의 뜻 있는 목소리를 모아 한국 교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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