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여야 공동공약'이 있다. 국회의원 봉급인 세비를 삭감하겠다는 공약이다. 매번 지켜지지 않으니 매번 다시 나온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1차원적 사고만 한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은 안 하는데 돈만 많이 받는다"는 국민의 지적에 "그럼 돈 덜 받겠다"고 답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국민들의 세비 삭감 요구 아래 놓인 '정치 불신'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정치 변화를 꾀할 때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3일 파행된 국회 본회의/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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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 나오면 서운한 '의원 세비 삭감'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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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회의에 불출석하는 의원에 대한 세비를 삭감하는 공약을 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자신들의 공약을 베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은 공천 심사 과정에서 세비 30% 삭감 서명서를 받았다. 서명하지 않으면 공천 배제하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세비 30% 삭감을 내걸고 최저임금 월환산액의 5배를 의원 세비 상한선으로 두자는 공약을 냈다.
4년 전 20대 총선 공약도 비슷했다. 민주당은 30% 세비 삭감, 국민의당은 25% 세비 삭감을 주장했다.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은 5대 개혁과제를 내걸고 1년 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소속 의원들의 1년치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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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당도 지킨 적 없는 공약(空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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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세비 삭감은 없었다. 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 발의를 하지 않다가 21대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관련 법안을 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국회 회의에 불출석한 의원의 세비를 줄이자는 내용이다. 법안은 상임위에 묶여있다. 20대 국회가 1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새누리당의 경우 20대 총선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세비 반납은 없던 얘기가 됐다. 총선 직후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 세비를 정할 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원들끼리 세비를 인상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제21대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될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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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세비 삭감 요구는 엉키고 설킨 '정치 불신'…변화 위한 근본적 대책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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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입장에서 세비 삭감 공약은 사실 전략적 선택이다. 세비 삭감은 여러번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올 만큼 이미 다수 여론이다. 정당은 여론의 기대에 부응해야 표를 얻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1차원적 사고'라고 지적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국민들이 세비 삭감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이유에는 여러 결이 있다"며 "세비 삭감이라는 표면적인 요구에만 응답하는 건 정치가 나아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건 세비 삭감 그 자체가 아니라 근본적인 정치 체질 개선이라는 이야기다. 서 연구원은 "'의원이 일을 안 한다', '일반 국민보다 급여가 지나치게 많다', '의원다운 품격있는 언어를 써라', '법을 지켜라' 등등 세비 삭감 요구의 기저에는 결국 '정치 제대로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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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경신되는 '사상 최악의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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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일 안 하는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19대 국회도 사상 최악이라는 평을 받았다. 매번 새로운 국회가 등장하지만 끝은 같다.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이다.
20대 총선에서 쏟아진 '세비 삭감' 공약은 21대 국회도 똑같을 수 있다는 복선이다. 다행인 것은 공약을 뒷받침하는 법안들이 세비 삭감 요구 아래 놓인 다양한 불만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대표발의한 법안은 의원 세비를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5배 이하로 하자는 게 골자다.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지만 급여 수준은 국회의원에 비해 현저히 적은 다수 국민의 '박탈감'을 고려한 법안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회의에 출석하지 않은 의원에 대해 세비 삭감'이라는 구체적 기준을 명시해 현실성있는 법안이라고 평가받는다.
둘 모두 비록 선거 직전에 나와 본회의 통과는 불투명하지만 이러한 법안이 토대가 될 수 있다. 22대 총선에는 세비 삭감 공약이 사라질 수 있을까.
김상준 기자 award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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