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통
국제유가 급락과 함께 휘발유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22일 경남 창원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주유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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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기름값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찍었다. 공짜를 넘어, 판매자가 웃돈을 얹어 줘야 기름이 팔린다는 얘기다. 이날 미국 서부 텍사스유(WTI) 가격은 배럴당 –37.63달러로 떨어졌다. 이후 유가는 다시 40% 이상 급반등했지만, 상승 추세는 이어지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석유 수요가 급감한 데다가 전 세계 원유 저장시설이 가득 찰 정도로 재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WTI 유가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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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는 왜 계속 돈을 받을까?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날 온라인에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 돈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공짜로 또는 웃돈까지 주며 기름을 넣어줄 주유소는 현재 없고, 앞으로 생길 가능성도 없다.
이번에 마이너스를 찍은 기름값이 WTI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거래될 원유를 미리 사고파는 선물시장에서 가격이 내려갔다는 얘기다. 국내 주유소에 정유사가 공급하는 휘발유·경유 등 가격은 미국 선물시장이 아닌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값에 따라 움직인다. 바로바로 석유가 팔려나가는(현물) 시장이다. 한 달 후 원유 가격을 예측해서 ‘베팅’한 다음 차익을 노리는 선물시장과는 다르다.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석유가 마이너스 가격으로 거래된 적은 당연히 없다. 게다가 국제유가가 국내 유가에 반영되기까지는 보통 3, 4주가량의 시차가 있다.
미국 텍사스주 서부에 있는 미들랜드의 석유 시추 시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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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앞으로는 기름값 좀 떨어지나?
국제유가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5월물 가격 하락 폭만큼 떨어지진 않는다. 일반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구입하는 기름값에는 이미 각종 세금이 붙박이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의 경우 L(리터)당 교통에너지환경세(529원)·주행세(137.54원)·교육세(79.35원) 등 745.89원이 세금이다. 이 세금은 휘발유 값이 아니라 L당 책정된다. 기름값이 오르든 말든 745.89원은 무조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판매 가격의 10%인 부가가치세가 추가된다. 경유·중유·등유 등 다른 기름에 붙는 세금은 종류나 세율, 세액에서 차이가 조금씩 있을뿐 기본틀은 휘발유와 같다. 기름값의 상당 부분이 세금이니 원유 가격이 폭락해도 주유소 기름값이 떨어지는 속도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국내 정유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와 국제유가 급락, 정제 마진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3일 울산 남구 SK에너지 석유제품 출하장이 한산한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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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유가에 이익 본 사람도 있나?
이론적으로는 지금 원유를 저장할 공간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국제 원자재 전문 민간연구기관 코리아PDS의 최은지 책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과거 1990년 미국의 원자재 무역회사 피브로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전 원유를 대거 저장했다가 수익을 낸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원유 저장시설은 정유사가 보유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석유제품이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재고로만 쌓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과거 국제유가가 떨어졌을 때는 국내 정유사 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가격 경쟁력에서 이득을 봤다”며 “하지만 지금은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제품 가격만 싸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유소를 이용하는 시민.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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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중요?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유가 하락은 기업에 원가를 절감할 기회가 된다. 가계 입장에서도 자동차 기름값, 난방유 구입비 등을 아낄 수 있으니 이득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유 산업 등 관련 업계의 돈줄만 끊길 뿐이다. 개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투자자가 몰린 WTI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를 대상으로 금융 당국은 원금 전액 손실 경고까지 했다. 금융감독원은 23일 이들 상품에 대해 소비자경보 최고 등급인 ‘위험’ 등급을 발령했다. 마이너스 유가로 인한 투자 손실이 가계 경제에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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