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3일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발표
잠입수사 적극 활용 방안 포함
수사 가이드 마련해 곧바로 시행
수사관 보호·증거능력 고려 법적 근거도 마련
전문가 "범죄 예방, 증거능력 인정 위해선 세부 기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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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이정윤 기자] 23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에는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언더커버(undercover investigationㆍ잠입수사)'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마약 및 성매매 수사에 주로 활용하는 특별수사 기법을 수사 단계에 적극 도입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 추적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에 맞춰 언더커버 수사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은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해 수사하는 잠입수사를 디지털 성범죄에도 적극 적용할 계획이다. 우선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곧바로 현장에 대입하고,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 보호와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능력 등을 고려해 법률적 근거도 곧 만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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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수사나 잠입수사 등을 뜻하는 언더커버는 그동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돼왔다. 대법원 판례상 범죄 의도가 있는 이에게 범죄 기회를 제공해 검거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적법하지만,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의 범행을 유도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수사 실무자들은 언더커버 기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언더커버를 통해 범죄자를 검거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수사관이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몰릴 수 있어서다. 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잠입수사 기법으로 범인을 검거하면 향후 수사관 보호가 어려운 경우가 있어 움츠려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반면 외국 수사기관은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언더커버를 수사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경우 2015년 아동 성범죄자를 잡기 위해 직접 아동 음란사이트 '플레이펜(Playpen)'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FBI는 이 사이트에 악성 스파이웨어를 심어 사이트에 가입한 약 1300명의 회원 소재를 파악해 이 중 137명을 기소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와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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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언더커버의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중요한 부분은 법정에서 언더커버의 증거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기관의 원활한 잠입수사를 위해선 무엇보다 명확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언더커버의 절차적 과정이 합리성에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일 수 있도록 수사 기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언더커버를 통해 수사를 해 사건을 재판에 넘기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면서 "법원 등 사법기관의 현장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관계기관이 공조해 현장에서 실무 교육을 함께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수사기법인 언더커버를 범죄 예방 측면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ㆍ테크앤로 변호사는 "언더커버를 법제화 하는 것과 동시에 언더커버를 통해 밝혀낸 범죄 사실은 수사기법까지도 공개해야 사전에 범죄를 차단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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