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의 카더레이타 정유시설에서 불꽃이 불타고 있다. 카더레이타|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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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국제 원유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유가폭락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도 원유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석유수출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10개 산유국 연합체인 OPEC+(총 23개국)에 감산 합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자국의 셰일오일 산업을 지키기 위해서 감산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세계 위기에선 미국이 감산 요구만 하지 말고 직접 감산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친미 산유국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사메르 알갑반 이라크 석유장관은 5일(현지시간) “OPEC+ 긴급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성사된다면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주요 산유국들도 감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갑반 장관은 “OPEC+ 회원국과 그 밖의 산유국 모두 같은 보트를 타고 있으며 유가 안정을 위해선 같이 보트를 해변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OPEC+ 일부 산유국들과 연락해본 결과, 새로운 감산 합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하일 마즈루에이 에너지부 장관도 이날 “OPEC+뿐 아니라 모든 산유국의 조화롭고 일치된 노력이 필요하다”며 “감산 합의가 이뤄지면 모든 산유국이 원유시장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신속하게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을 포함한 모든 산유국이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달 6일 OPEC+의 감산 합의 결렬은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전쟁’의 신호탄이었다.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반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사우디는 4월 원유공급가를 낮추고 산유량을 2월보다 27%나 많은 하루 1230만배럴로 늘렸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원유수요가 줄어드는데, 거대 산유국들이 감산은 하지 않고 증산까지 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선으로 급락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유가전쟁’ 이면에는 미국이 있었다. OPEC+는 감산 합의를 통해 국제유가를 유지해왔다. 이는 미국의 셰일산업에도 도움이 됐다. 채굴단가가 높은 셰일오일은 유가가 배럴당 45달러는 유지해야 시장성을 얻는다. 유가가 낮아질수록 미국 셰일산업은 타격을 받는 셈이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유가폭락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피하기 위해 ‘3월 감산 합의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지난 3일 러시아는 “사우디가 원유를 할인하고 증산한 건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경쟁자(미국)를 견제한 것”이라고 했고, 이어 4일 사우디는 “셰일산업을 적대시하는 건 러시아”라고 맞섰다. 양국이 다시 부딪치면서 6일 예정됐던 OPEC+ 긴급회의는 9일로 미뤄졌다.
앞서 ‘유가전쟁’의 또 다른 플레이어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셰일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협조를 이끌어내려 했다. OPEC+ 산유국들에 전 세계 하루 산유량의 10%에 해당하는 하루 1000만~15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제안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의에 긍정적으로 답하면서도 “미국의 감산 동참”을 요구했고, 사우디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저유가로 미국의 에너지 업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수입 원유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감산에 동참하기보다는 OPEC+를 압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관료들이 사우디와 러시아의 원유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OPEC+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회의가 열리면 고위급 인사를 보내 친미 산유국들에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곤 했다. 특히 중동의 우방이자 OPEC을 이끄는 사우디를 통해 유가를 조절하려 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사우디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사우디에 거의 공짜로 군사원조를 하고 있는데…그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압박했다. 이란과 적대적인 사우디는 경제력은 이란보다 앞서지만 군사력은 뒤쳐져 미국에 기대고 있다.
문제는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에 이르더라도 국제유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배럴당 50~60달러를 오가던 유가는 배럴당 20~30달러 선으로 급락한 상태다. 5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은 원유 트레이더, 애널리스트, 전략가 등 전문가 3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2명은 2분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평균 20달러 수준에서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 응답자 중 9명은 배럴당 20달러 밑으로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원유수요 감소 규모가 워낙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의 올해 1분기 석유수요가 40% 가까이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 FT는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줄어들면서 세계 원유수요가 이미 20~40% 감소했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비OPEC+ 산유국들이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는 지난 4일 주요 산유국이 감산 합의에 이르면 감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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