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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와 마주 못해도… 소리없는 미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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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語로 하는 미사’ SNS 통해 봉헌하는 청각장애 사제 박민서 신부

동아일보

에파타 성당 박민서 신부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신자들에게 수어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배경 그림은 이 성당 신자인 화가가 청각장애가 있는 신자들의 미사를 표현한 작품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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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는 중단됐지만 한 사제의 미사는 멈추지 않았다. 수어(手語)로 진행되는 침묵의 미사다.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인 박민서 신부(52)는 미사가 중단되자 신자들의 단체사진을 제대(祭臺)에 올려놓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인 서울 성동구 마장로 에파타 본당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수어 통역을 통해 진행됐다.

―혼자 미사를 올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어떻게 시작했나.

“무엇보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과 성당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당신들을 기억하고,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니 힘내 달라’라는 마음을 전하려고 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SNS에서 미국의 농아 사제 몇 분이 미사 올리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톨릭 방송에서 미사를 중계하지만 모두 수어 통역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자막도 부족해 답답해하는 신자가 적지 않다.”

동아일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미사를 촬영 중인 박민서 신부.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반응은 어떤가.

“(박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SNS 대화방의 문자들을 보여줬다) 보시고 너무 좋아들 한다. 한 할머니는 신부님 얼굴 보니 감사하고 눈물난다고 썼다.”

그는 서울 강북구의 한 수녀회 건물을 빌려 미사를 집전해 왔다. 하지만 등록된 신자는 500여 명인데 150명 정도만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는 물론이고 지방과 해외의 한인 성당 150여 곳을 찾아가 수어로 호소했고 4만 명이 후원금을 보탰다. 첫 삽을 뜬 지 2년 만인 지난해 8월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에파타 성당이 완공됐다. 에파타는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아람어로 ‘열려라’라는 뜻이다. 이곳은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대성전과 소성전, 언어청각치료실, 작은 피정의 집 등을 갖췄다. 미사를 봉헌하는 350석 규모 대성전은 어디서든 수어가 잘 보이도록 계단식으로 만들었고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설치해 수어와 자막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성당 완공 이후 기쁨이 컸을 텐데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성당은 청각장애가 있는 신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수어 미사를 보고 서로 얼굴을 보기 위해 충남 천안에서 오는 신자들도 있다. 코로나19를 이겨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을 것이다.”

―최근 성당에 변화가 있다고 들었다.

“(박 신부 얼굴에 큰 웃음이 번졌다) 대성전과 소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성됐다. 성당 앞에는 예수치유상과 영혼의 영적 배달을 상징하는 우체통 모양의 촛불 박스가 새로 들어섰다. 신자들이 보면 좋아할 텐데 아직 못 보여줬다.”

―성당 봉헌식 때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어떤 말씀을 했나.

“축하의 말씀과 함께 청각장애 신자들의 영혼을 잘 이끌어 달라고 하셨다.”

―2013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시청각장애인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78)와 함께 만난 기억이 난다.

“신부님이 고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육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어려울 때마다 힘을 준 마음의 스승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어 미사에 대한 신자들의 갈증이 커서 미사를 밴드에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성당이 완공될 때 ‘하느님은 불가능이 없으시다’는 말이 떠올랐다. 용기를 잃지 않고 기도하면 곧 성당서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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