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과정 추적 어려워 범죄에 악용 빈번…"전담 관리감독 기구 필요"
지난 2∼3월 트위터에 올라온 성착취물 판매 게시물 |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중·고등학생이 나오는 영상 2만원에 팔아요. 상호 보안상 '문상'(문화상품권의 줄임말)만 받아요."(지난 2월 트위터에 올라온 성 착취물 판매 게시물 중)
'n번방', '박사방' 등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공유한 온라인 메신저 대화방의 실체가 연일 드러나는 가운데 암호화폐뿐 아니라 문화상품권도 성 착취물 유통 과정에 '음성 화폐'로 악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상품권은 애초 도서, 영화, 공연, 게임 등 다양한 문화상품 이용을 촉진하는 결제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금처럼 익명성이 강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는 범죄자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색 결과 트위터에서는 성 착취물을 판매한다면서 지불수단으로 문화상품권을 요구하는 게시물을 최근까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이용자는 지난달 말 트위터에 미성년자가 나오는 성 착취 영상 섬네일(미리보기)을 올려놓고 "무조건 문상 거래만 한다"며 자신의 메신저 대화명을 적어 놓았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이용자도 "영상 15개에 1만원, 영상 35개에 2만원"이라며 "문상으로 돈을 받는다"고 트위터에 남겼다.
이처럼 거래 수단으로 문화상품권을 언급하는 성 착취물 판매 글은 스마트폰과 SNS가 대중화된 2013년께부터 지난달까지 트위터에서만 7년 이상 꾸준히 발견됐다.
범죄에 악용하는 일이 많다 보니 성 착취물 등과 관련된 검거 사례에도 문화상품권은 빈번히 등장한다.
2014년 부산 남부경찰서는 SNS에서 여자 중학생 행세를 하며 문화상품권을 받고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 착취물을 판 10대 남성을 적발했다. 2016년에도 문화상품권과 현금 등을 받고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판매한 10대 남성 2명과 영상 구매자 56명이 검거됐다.
[연합뉴스TV 제공] |
문화상품권이 성 착취물 거래에 쓰이는 주된 요인은 익명성이다. 온·오프라인에서 별다른 절차 없이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18자리 핀(PIN·개인식별번호) 번호만 넘겨주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사실상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적이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등 금융범죄에도 악용된다. 가족·지인을 사칭해 "문화상품권을 인터넷에서 사서 PIN 번호를 찍어 보내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빌린 뒤 소액결제 기능으로 문화상품권을 구입해 이를 가로채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문화상품권을 지불수단으로 이용한 범죄도 추적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악용을 막으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찰 출신인 정순채 동국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객원교수는 "PIN 번호 입력 위치나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추적해 수사가 가능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이라며 "발행업체들이 사용처나 거래 과정을 쉽게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대포통장 구하기가 점점 까다로워지면서 '검은돈' 세탁에 문화상품권이 쓰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은행·증권 거래를 금융감독원이 감시하듯 상품권도 발행·유통·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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