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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물가와 GDP

IMF 후 최저인 근원물가로 코너에 몰린 한은… 시장에선 "돈 풀기 동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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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 물가상승률 0.4%, 1999년 12월 이후 최저치
"추경용 적자 국채 절반 이상은 한은이 매입해야"

통계청이 2일 ‘2020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한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코너에 몰리게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하 전년비 기준)이 올해 들어 가장 낮은 1.0%까지 둔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준금리 등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말기인 1999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0.4%까지 내려온 것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낮은 근원물가 상승률’은 한은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돈 풀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라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통화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데, 낮은 물가가 지속된다는 것은 유동성을 풀어서 수요측 물가압력을 살려야 하는 때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발행한 환매조건부채권(RP)을 3개월간 무제한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국채와 회사채 등을 직접 매입하라는 시장의 요구에 선을 긋고 있는 한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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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왼쪽) 한국은행 총재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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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근원물가는 돈 풀기에 좋은 환경… RP 매입은 효과 미약"

지난해 연중 내내 0%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1.5%로 올라선 후 석달째 1%대를 유지 중이다. 그러나 한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근원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2월 이후 13개월째 0%대를 이어가다가 지난달에는 1999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0.4%까지 내려왔다.

기후와 국제정세 등 경제 외적 요인으로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은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근원 물가상승률이 0%대에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라는 점을 보여준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의 유동성 공급 확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국채 3년 금리는 전일대비 3bp(1bp=0.01%p) 하락(채권가격 상승)한 1.062%, 국채 10년 금리는 전일대비 2bp 내린 1.525%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RP 매입으로 5조원가량의 유동성을 공급한 게 강세 요인이 됐지만, 근원물가가 IMF 위기 후 최저치를 나타내면서 한은의 추가적인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 금리 하락 재료가 되고 있다"면서 "한은을 향한 국채, 회사채 매입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은은 이날 RP 91일물 매입을 통해 5조2500억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 지난달 26일 발표한 무제한 RP 매입 계획을 처음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석 달간 자금을 빌려주는 RP 매입으로는 시장 안정이 힘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한은의 RP 매입 계획이 발표된 26일 이후 통안채 91일물은 0.926%에서 0.879%까지 내려왔지만, 국채 3년, 10년물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국채 10년물 등 장기금리는 같은 기간 1.502%에서 1.525%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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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및 근원 물가상승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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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용 국채 매입 통해 장기 금리 안정시켜야"

채권시장에서는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늘어날 적자국채 증가 부담을 한은이 짊어져야 장기금리 상승이 주춤해질 수 있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시장에 공급하는 국채를 한은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지난달 19일 시장 안정을 위해 1조5000억원 가량 국채를 매입했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코로나 대응을 위해 늘어나는 적자국채의 절반 이상을 한은이 매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1차 코로나 추가경정예산 11조7000억원 마련을 위해 적자국채를 10조3000억원 늘릴 계획이고, 2차 추경 예산을 위해서도 적자국채 발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 채권운용본부장은 "추경 등으로 20조원 이상 적자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절반인 10조원가량은 한은이 매입해야 장기 금리 상승세가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궁극적으로 한은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장기금리를 안정시키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은은 무제한 RP 매입을 발표하면서 ‘통안채 91일물 금리를 기준금리 대비 10bp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장기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은은 회사채 매입 요구에 대해서도 "정부 보증이 있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의 목표로 장기 국채금리의 하향 안정을 제시했는데, 한은은 장기금리 안정화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서 "국채 금리가 안정돼야 회사채 금리 등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만큼 한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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