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기준 없어 국민들 혼란
“청와대·여당 총선용 급조했지만
정부는 제대로 설명할 능력 없어”
지난달 30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 하위의 정확한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정부 합동브리핑에서다. 정부는 이날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제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기준은 한둘이 아니다. 자연히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 장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돌아온 답은 ‘일상적인 소득’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이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소득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월(소득이) 얼마 이하면 받는 건가”라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날 브리핑에 나선 5명의 장관 중 아무도 속 시원한 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부처 간 말이 엇갈려 혼란을 부추긴다. 박 장관은 이날 “재산과 소득을 합쳤을 때 받을 사람이 받고 안 받을 사람은 안 받도록 사회적 형평에 맞게 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소득뿐 아니라 재산도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기재부는 이 말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구윤철 기재부 1차관은 31일 라디오 방송에서 “시간이 많고 넉넉하면 재산, 금융소득, 자동차세를 넣을 수 있지만 이것(지원금)은 긴급성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재산을 소득 기준에 반영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엇박자가 이어지자 기준 결정을 떠안은 복지부는 더 모호한 표현을 써서 상황을 무마했다. “합리성과 신속성 두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관이 모호하니 그 아래는 더 모호할 수밖에 없다.
9조1000억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주겠다는 정부가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니 결국 분통이 터지는 건 국민이다. 직장인 차모(43)씨는 “맞벌이하던 아내가 올해부터 휴직해 소득이 줄었는데 어느 시점의 소득을 적용하는지, 자동차도 재산에 포함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급한 마음에 개인의 소득인정액을 확인할 수 있는 ‘복지로’ 사이트로 몰려갈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먹통’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정·청 회의 결과 정부 원안에서 급히 바뀌는 바람에 큰 원칙을 발표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국민 70%에게 지급하겠다는 것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다”며 “혼선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라는 기준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월급·집·자동차 등 재산을 구성하는 요소 중 어디까지 포함하느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소득의 위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예견된 혼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정부는 여당과 논쟁을 벌였지만, 수혜 범위와 기준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번뿐이 아니다. 세율 조정 여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최근 불거진 굵직굵직한 정책 논쟁에서 정부는 항상 정치권에 끌려다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를 앞둔 청와대와 여당이 ‘소득 하위 70% 기준’을 급히 던졌고, 행정부는 이를 제대로 포장해 국민에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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