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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다시는 안 봤으면 했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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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였다. 당시 식당업의 고통을 매스컴에서 자주 다뤘다. 경기 하락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게 식당 동네이니까. 그때 즐겨 다루던 게 중고 주방기구 도매상 인터뷰였다. 주방기구들이 ‘근으로 달아 팔리는’ 현장이 뉴스에 중계되었다. 그걸 보면서 눈물짓는 식당업주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들은 그 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재기했을까. 아니면….

경향신문

당시 유행이 다시 돌아오는 모양이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같은 업자들은 눈물겨운 이름이다. ‘반값’. 반값 삼겹살, 반값 햄버거, 반값 치킨…. 뭐라도 해서 살아남자는 몸부림이다. 통계는 모르겠지만, 시중의 식당들은 대략 절반 밑으로 매출이 줄어든 듯하다. 원래 상인들이야 늘 장사 안된다고 아우성이게 마련이나,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 맞다. 친구에게서 이런 문자가 어제 왔다.

“첫 팀이 마지막 팀이다.”

보통 식당에서는 한 탁자를 차지하는 손님 단위를 ‘팀’이라고 부른다. 첫 손님이 전부였다는 뜻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 다들 나와서 밥 좀 팔아주세요,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식당들의 냉가슴은 어찌 달랠 것인가. 식당은 사실, 고용시장도 꽤 많이 떠받치고 있다. 식당이 굴러간다는 것은 거기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살아간다는 뜻도 된다. 요리사와 홀 직원들의 감원이 벌써 시작됐다. 불황에도 언제나 인력 충원이 힘들었던 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정말 구체적으로 상황이 나빠지는 모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식당가에서는 4월 위기설이 돌았다. 4월쯤에도 병이 잡히지 않으면 절반은 문을 닫는다는 가정이었다. 곧 4월이다.

좀 다른 각도의 이야기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아이엠에프(IMF) 한 번만 더 오면 좋겠는데.”

남의 불행이 절호의 치부 기회라고 생각하는 부류다. 원래 투자는 그런 거라고도 한다. 팔 때 사라. 주택도 그랬다. 다들 팔아치웠고, 심지어 융자를 못 내서 청약이 날아간 서민 아파트들이 매물로 나왔다. 분양권 전매라는 이름으로. 그걸 산 사람들이 1990년대 후반에 부를 일궜다. 사실 정부가 판을 깔아줬다. 경기를 살리겠다며 다주택 보유 억제정책을 포기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더 벌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줬다.

요즘 저런 말 했던 인간들에게 기회가 또 오는 듯해서 마음이 쓰리다. 정말 그렇게 될까. 아니겠지, 아니겠지. 길을 걷는데, 손님 없는 식당 한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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