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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찌질한 가해자에게 걸맞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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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동백꽃>에서 가장 비통하면서도 감동적인 순간은 여성혐오 사회에서도 맨 아래에 위치한 ‘직업여성’ 향미가 살해당하고, 동백과 옹산의 여성들이 하나로 뭉치는 장면이다. 연쇄살인범 까불이는 범죄스릴러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흉기가 아니라, 향미가 마시던 500㎖ 맥주잔, 밀대, 대걸레 같은 옹산 여성들의 도구로 응징당한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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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받는 KBS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은 편견의 폭력에 갇혔던 비혼모 동백(공효진)이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동백은 한 연쇄살인사건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6년 전, 외지인이던 동백이 옹산에 처음 도착해 까멜리아라는 ‘술집 겸 밥집’을 차렸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 연쇄살인의 공포가 이 작은 도시를 덮쳤다. 사건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될 뻔했던 동백은 다행히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살인자는 여전히 동백의 주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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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로맨스, 휴먼, 스릴러의 요소를 절묘히 배합한 복합장르 드라마다. 제작진에 따르면 각각의 요소가 4:4:2의 비율로 섞여 있다. 이 중 제일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스릴러는 사실 이 작품의 아주 중요한 성취를 보여주는 요소다. 요컨대 <동백꽃>은 남성 중심적인 범죄스릴러 장르를 여성적 시선으로 뒤틀고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데 탁월함이 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설정이 연쇄살인범의 호칭이다. ‘까불이’가 작가의 의도적인 작명이라는 것은 이 호칭이 주는 인상에 대해 처음 언급한 용식(강하늘)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까불이 고깟 놈을 왜 아직도 못 잡아? 이름부터가 같잖잖아요.”

이 한없이 하찮아 보이는 작명은 그동안 미디어가 덧씌워 온 ‘전설적인 살인마’들의 판타지를 간단히 깨부수는 효과가 있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많은 범죄스릴러가 ‘범인은 누구인가’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신비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은 범인과 추적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 피해자들은 ‘시체 1, 시체 2’처럼 그들의 성취를 부각하는 도구로 묘사된다. <동백꽃>은 이 같은 남성 중심적인 범죄 재현 관습을 우스꽝스럽게 비튼다. 기존의 범죄스릴러에서 흔히 범인의 ‘아우라’를 완성하고 그 별칭의 배경이 되는 고유의 ‘시그니처’는 “까불지 마”라는 유치한 메모로 대체되어 그의 ‘같잖은’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아유, 저런 사이코 머릿속이 뭐가 궁금혀요?”라는 용식의 말처럼, 이 작품은 지질한 가해자의 관습적 서사에는 관심이 없다. 범죄자의 사연을 부각하고 그의 일탈 행위로서 사건을 묘사하는 대신, 범죄를 배양한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여성의 이야기에 힘을 싣는다. “까불이 고깟 놈”이 쉽게 잡히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범죄 동기와도 관련이 있다. “술 따르고 번 돈으로 맨날 택배만 시켰다”는 첫 희생자에 대한 까불이의 묘사는 이 범죄가 여성혐오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말과 달리, 그의 범행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었다. 문제는 여성 피해자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까불이와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경찰과 언론은 ‘직업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생존자 동백을 향해 “술집 여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며 2차 가해를 한다. 한 기사 아래 달린, “연쇄살인은 다 더러운 년들이 당한다”는 악성 댓글은 그 폭력의 토대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까불이의 범죄 행각은 여성 폭력에 무감하고 더 나아가 동조하는 환경에서 양분을 얻는다.

<동백꽃>에서 가장 비통하면서도 감동적인 순간은 여성혐오 사회에서도 맨 아래에 위치한 ‘직업여성’ 향미(손담비)가 살해당하고, 동백과 옹산의 여성들이 하나로 뭉치는 장면이다.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향미가 동백을 대신해 죽은 뒤, 그들은 더는 참지 않는다. “향미씨가, 이웃이, 사람이 그렇게 죽으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바로 이 생존자 여성들에게 직접 까불이를 잡고 향미를 비롯한 피해자 여성들의 복수를 실현할 기회를 준다. 까불이는 범죄스릴러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흉기가 아니라, 향미가 마시던 500㎖ 맥주잔, 밀대, 대걸레 같은 옹산 여성들의 도구로 응징당한다. 그의 이름값에 걸맞은, 역대 범죄스릴러 장르 연쇄살인범 가운데 가장 지질한 말로다. 드라마는 마지막까지도 가해자의 서사가 자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까불이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고 또 계속 나올 거”라는 그의 말에 돌아오는 건 ‘어줍지 않은 여운 남기려고 하지 말라’는 비웃음뿐이다.

<동백꽃>의 탁월한 문제의식은 요즘 같은 시국에 새삼 더 가슴에 와닿는다. “구더기는 장독을 깰 수 없다. 진짜로 무서운 건 까불이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을 지킬 수 없는 거였다.” 여성 대상 폭력 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정말 비판해야 할 대상은 범죄자 한 사람의 행위를 넘어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차별의 구조와 이를 부추기는 제도다. <동백꽃>은 그중에서도 본인을 악마로 묘사하는 범죄자들의 망상에 토대를 제공하는 여성혐오적 미디어에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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