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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중앙 시조 백일장] 3월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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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호모 텔레포니쿠스*

-장수남

내 안으로 열고 닫는 불면의 검색 창

액정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신이다

습관은 생각에 앞서 손가락을 내밀며

불가능과 가능성의 경계는 사라지고

유령에게 홀린 듯 빠져든 완벽한 자폐

또 다시 나를 열어둔 채 클릭만 반복한다

나를 길들인 것은 나일까 휴대폰일까

주연도 조연도 관객도 일인용 무대

끝없이 황홀한 감옥 쉬지 않고 복제된다

*몸에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현대인을 빗댄 신조어

■ ◆장수남

중앙일보

장원 장수남


1954년 전남 곡성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차상〉



빛나라, 황사

-장재원

황사가 없는 날은 노을도 보지 말자

오름을 올랐다가 놓고 오는 다 저녁

산방산 어느 한 자락 그마저 보지 말자

산은 적막에 지고 적막은 산에 진다

저 산에 무덤 하나 여태 남은 꽃향유

반세기 저물어가도 떠나지를 않는다

땅 한 평 없었는데 돌아가시니 한 평 땅

새소리 휴대폰 소리 하늘 끝 저 그리움

아버지 나의 아버지 황사여 빛나시라



〈차하〉



괄호 안에서

-정상미

토요일 절름거리고 일요일 지워질 때

구설수가 모여든 담벼락은 금이 갔다

마당은 앞뒤가 닫혀 봄에 닿지 못한다

한 번의 실수로 기울어진 죄수의 딸

사람들은 돋보기로 나를 들여다본다

자라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상처들



〈이달의 심사평〉



응모자의 대부분이 코로나19에 초점을 맞췄다. 어둠에서 별을 찾지만 처방에 대한 백신은 부족하다. 결국 사람이 이길 거라는 의지와 확신 속에 봄을 맞는다.

우리 모두에게 리셋이 필요한 시대다. 그것을 경고하는 장수남의 ‘호모 텔레포니쿠스’를 오랜 격론 끝에 장원으로 올린다. 자칫하면 두통이 될성부른 화제를 진부하거나 모나지 않게 투사하고 있다. 감성적 자폐에 빠지기 쉬운 모티브를 흔들리지 않고 감정의 틈입 없이 사실적인 흐름으로 객관화로 이끌며 통찰과 조탁으로 빚어낸 끈기를 기대한다. 차상으로 장재원의 ‘빛나라, 황사’를 선한다. “황사”는 산방산 자락의 “한 평 땅”에 살고 있는 이에 대한 꽃향유 짙은 역설적 수사다. 각 수의 초장마다 흐르는 유장한 가락은 이 시조의 원동력으로써 긴장감을 놓지 않는 탄력 있는 표현으로 진정성을 얻고 있다. 차하로는 정상미의 ‘괄호 안에서’를 택한다. 화자는 괄호 안에 정말 말하고 싶은 그러나 말할 수 없는 말을 숨기고 있다. 그것으로 시적 모호성이나 다의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 사물성의 언어로 명확한 표현을 얻는 것이 지름길이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는 즐거움 속에 남궁증, 신영창 씨에게 아쉬움을 놓는다.

심사위원 : 최영효·강현덕 (심사평 : 최영효)



〈초대시조〉



천학, 날다

-유헌

잉걸불 입에 물고

열반에 들었는지

태토(胎土)는 말이 없고

새소리만 요란하다

상처가 상처를 보듬는

옹이 같은 만월 한 점

천 년 전 왕조가

다스린 불의 비사

물레에 칭칭 감긴

밀서를 펼쳐 들자

일제히 흰 깃을 치며

날아가는 새떼

■ ◆유헌

중앙일보

유헌


2011년 월간문학 시조 신인상, 한국수필 신인상.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시조집 『노을치마』『받침 없는 편지』

이 시조 한 편을 읽으면서 나는 전신이 긴장되고 신경은 곤두서고 감각은 예민했다. 열반, 태토, 만월, 비사, 밀서 등의 고풍스런 시어가 여기서는 반상의 묘수를 보듯 오히려 고답하지 않아 좋다. 초장과 중장 사이, 중장과 종장 사이에 각성의 파장이 넘실거리고, 1연에서 2연으로 건너가며 장강을 흐르는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니 좋다. 시어는 생경하되 비화를 품고 있고 천년을 흘러 온 시간은 요란하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색은 적요하다.

1연 초장의 ‘잉걸불’과 2연 초장의 ‘불의 비사’는 시어를 배치하는 시인의 전략이다. 불은 도공의 열정이 빚어내는 도예 장인의 내공을 상징한다. 도예가의 손과 발을 거친 태토는 말이 없어도 요란한 새 소리를 듣게 하고 상처를 보듬는 만월을 보게 한다. 장인의 손으로 빚어내는 ‘열반’과 ‘만월’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관통하고, 화자는 눈을 감고 이 모습을 지켜본다. 2연은 1연의 ‘태토’를 뛰어 넘어 시인의 상상력이 우주의 시간으로 펼쳐진다. 한 점 도예 작품 앞에서 ‘천 년 전 왕조’로부터 지금 눈앞에서 ‘일제히 흰 깃을 치며 날아가는 새떼’에 이르기까지 화자가 품고 있는 ‘비사’와 ‘밀서’는 천 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상처는 ‘잉걸불 입에 물고 열반에 들’때까지 ‘비사’에 담겨지고 ‘밀서’에 기록된다. 그렇게 남겨지는 상처는 ‘만월’이 상징하는 용서와 화해로서 보듬고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창공을 ‘날아가는 새떼’들이 장강의 깊은 시간을 건너려면 더 많이 사색하고, 더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물레를 돌리는 장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더 부드러워지는 태토처럼!

김삼환 시인

■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 편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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