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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성한용 칼럼] 반정치주의 음모에 걸려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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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야당은 욕만 배가 터지게 먹고 정치 혐오는 확산될 것이다. 투표율은 갈수록 더 떨어지고 국회의 국민 대표성도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반정치주의로 무장한 기득권 세력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한겨레

성한용 ㅣ 선임기자

1948년 5월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적 방식으로 공직자를 선출한 최초의 선거였다. 정치와 선거는 해방된 나라, 해방된 백성의 꿈과 희망이었다.

여러 정파가 선거에 반대했지만, 유권자의 열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95.5% 투표율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는 정치를 억눌렀다. 투표율은 70%대로 떨어졌다. 민주화 염원이 폭발한 1985년 2·12 총선에서 84.6%로 치솟기도 했지만, 투표율은 계속 떨어졌다.

투표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반정치주의다. 반정치주의는 분단 기득권 세력과 자본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유포하는 이데올로기다.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반정치주의로 정치, 특히 국회와 국회의원을 공격한다. 정치를 마비시켜야 남북 간 긴장을 유지하고 자본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에게 정치와 선거에 대한 실망감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008년 46.1%로 최저치를 기록했던 총선 투표율은 2012년 54.2%, 2016년 58.0%로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2020년 21대 4·15 총선 투표율은 어떻게 될까? 뚝 떨어질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비례 위성정당을 만드는 거대 양당의 추태가 가관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명해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한 뒤 위성정당에 입당시키는 편법을 ‘파견’이라는 용어로 당연시하고 있다.

정치 혐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큰일이다. 투표율이 떨어지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벌이는 추태 경쟁의 이면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반정치주의 음모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처음부터 의원 정수, 특히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했다. 석패율제도 원안대로 도입하는 것이 옳았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의원 정수를 한명도 늘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기득권 세력에 편승한 이른바 보수 신문이 증원 반대에 앞장섰다.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배고픈 사람끼리 싸움을 벌이게 된다. 기득권 세력은 1당과 2당이 비례대표 의석 몇 자리를 놓고 개싸움을 벌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승리하면 어떻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을까? 황교안 대표 표현대로 좌파 독재를 끝장내고 자유 우파가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자유 우파가 영원히 집권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황교안 대표의 적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문재인 대통령은 어차피 출마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면 어떻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개혁 입법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했던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까? 보수 세력에게 다시는 정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적은 황교안 대표가 아니다. 미래통합당이 아니다. 여당한테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다.

그렇다면 여당과 야당이 비례대표 10여석을 놓고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4·15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화와 타협 없이는 국회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한쪽이 5분의 3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는 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는 셈이다.

결국 여당과 야당은 욕만 배가 터지게 먹고 정치 혐오는 확산될 것이다. 투표율은 갈수록 더 떨어지고 국회의 국민 대표성도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반정치주의로 무장한 기득권 세력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서다. 여야 모두 정신 차리고 꼼수를 중단해야 한다. 정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의원 정수를 늘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치가 다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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