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코로나 사태와 관련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바이러스에 맞서는 우리의 싸움도 거대한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라며 "나 혼자 안 아파도 소용없고 나 혼자 잘 살아도 소용없다"고 했다. 아울러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듯 초등학교 운동회 얘기를 꺼내면서 말을 시작했다. "따뜻한 봄날, 초등학교 소풍이나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이길 기회를 주는 경기가 이인삼각 경기였습니다. 혼자 앞서려 하면 오히려 낭패, 서로 호흡과 보조를 맞춰야 무사히 결승전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모처럼 옳은 얘기를 했네." 싶은 국민도 있겠지만, 적잖은 국민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인삼각 경기’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서로 붙은 쪽 두 발을 끈으로 묶고, 다른 쪽을 발을 각각 재게 놀려서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경기다. 두 사람(二人)이 함께 섰으니 발이 네 개가 되는데, 두 발을 한데 묶었으니 삼각(三脚), 즉 발이 세 개가 된다. 요즘은 드물게 보는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소풍날이나 운동회 때 빠지지 않고 하던 경기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마치 국민들끼리 이인삼각 경기를 한다는 듯이 "나 혼자 안 아파도 소용없고 나 혼자 잘살아도 소용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이길 기회를 주는 경기"라고 했다. 그런데 ‘운동을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로 나눴다는 것은 코로나 사태의 대응에도 사회적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무슨 상대적 박탈감이라도 있다는 듯이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마치 ‘사회적 불평등’을 역으로 꼬집듯이 또 한 번 ‘공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자.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투(死鬪)를 벌이는 이인삼각 경기는 국민과 국민이 벌이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인삼각 경기는 싫든 좋든 ‘문재인 정부와 국민’이 발을 한데 묶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국민은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면서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데 정부가 번번이 딴 짓을 하면서 보조를 맞추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현장 의료진과 시민들이 묶은 이인삼각은 너무도 놀라운 협조를 잘 하고 있다. 그런데 발 한쪽을 정부와 묶는 순간,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박능후 보건장관은 지난 2월 "중국인보다 중국 다녀온 우리 국민이 더 많이 감염시킨다"는 발언을 해서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그 뒤 의료진의 방호복과 마스크 부족 상황과 관련해서 "본인(의료진)들이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는 부족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해 현장 의료진은 물론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박능후’를 검색하면 ‘망언’, ‘막말’, ‘경질 청원’ 같은 국민 여론이 쏟아져 나온다. 박능후 장관은 원래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양극화나 빈곤문제를 연구해온 사회복지 학자다. 부친이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은사이라는 인연이 있고, 문재인 후보의 자문그룹에서도 활동했다. 친문(親文) 인사 중에서도 가장 끈끈한 친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이러스나 방역 쪽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현장 의료진이 이런 사람과 이인삼각 경기를 하려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사재기 없는 나라는 국민 덕분"이라며 "국민에게 감사하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말을 똑바로 해보자. 국민들이 사재기를 자제하고 있는 것은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일까. 긴말 필요 없다. 안혜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쓴 칼럼 ‘의사와 택배기사가 한국을 살렸다’는 보면 답이 나온다. "지금 대한민국이 나름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건 ‘사’자 달린 두 직업, 그러니까 의‘사’와 택배기‘사’ 덕분"이라고 했다. 그중 택배기사 부분을 인용해본다.
"택배기사도 코로나 국면에선 의사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이 요즘 한국에서 가장 감탄하는 건 아마 어딜 가나 사재기 없이 꽉꽉 채워진 매대(賣臺)일 것이다. 가깝게는 홍콩에서부터 멀리는 유럽·미국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벌어진 사재기가 왜 한국에선 없었을까. 초반 확진자 폭증으로 방역망이 무너져버리다시피 했던 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사재기는커녕 이동 금지 명령 같은 강력한 정부 지침 없이도 어떻게 다들 자발적 격리를 택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여기엔 택배기사의 공이 적지 않다. 지금 한국에선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생필품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배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언제든 스마트폰만 열면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에 굳이 사재기하러 마트로 달려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깔아놓은 인프라가 아니라 민간기업 쿠팡이 구축한 전국적 배달망이다."
그렇다. 여기에 덧붙여 진즉부터 코로나 진단 키트를 준비하고 생산했던 민간 기업, 어떻게든 별도 설비를 갖춰 마스크 생산을 늘려보려고 애썼던 민간 기업이 있었기에 나름 정상적인 상황 유지가 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중세 역사와 전쟁, 그리고 군사 문화등을 연구한 세계적 유명 학자 유발 하라리는 지난주말 파이낸셜 타임스에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라는 장문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시민적 역량강화(empowering citizens)’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최근 몇 주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례는 바로 한국,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이다." 유발 하라리도 한국이 보인 모범 사례는 ‘시민적 역량’이라고 본 것이다. 정부가 생색을 낸다면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현실 인식을 똑바로 하시라고 당부 드린다. 지금 이인삼각 경기는 ‘정부와 시민’이 발을 한데 묶은 꼴이다. ‘정부와 의료진’이 발을 묶었다. ‘정부와 민간 기업’도 그렇다. 정부는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발 시민과 의료진과 민간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결론 부분에서 "또한, 언제나 정부가 선두에 설 것입니다. 함께 이겨내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정부가 선두에 설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시민들과 의료진과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한다. 정부는 이들의 발목만 안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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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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