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시점 1년 이전에 금융회사가 운용하는 유언대용신탁에 맡긴 신탁자산은 유류분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고인의 유언에 관계없이 법정 상속분에 대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게 민법상 '유류분 제도'인데, 최근 위헌법률심판까지 제청되는 등 향후 상속 관행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3부(부장판사 김수경)는 최근 고인의 첫째 며느리와 그 자녀들이 고인의 둘째 딸을 상대로 11억여원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고인인 시어머니가 둘째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사망 3년전 가입한 유언대용신탁 자산에 대해 며느리가 유류분을 주장했지만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돼 있는 상속재산의 가액을 말하는 것으로, 법으로 최소한의 상속분을 정한다는 점에서 유언보다 우선한다.
고인은 2014년 4월 29일 A은행의 '하나 리빙 트러스트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생전수익자를 본인 자신으로, 사후 1차 수익자를 피고인 둘째 딸로 정했다. 신탁대상은 현금 3억원과 서울시 및 경기도 성남시 소재 부동산 2곳이었다.
피고는 고인의 사망 직후인 2017년 11월 24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디음해 4월 30일 나머지 신탁대금인 현금 3억원을 신탁계좌에서 출금했다. 상속 채무액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인 첫째 며느리와 자녀들은 고인의 사망 전에 사망한 아들 정모씨의 상속인들로, "정모씨를 갈음한 대습상속인으로 고인의 상속재산에 대해 유류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고인이 생전에 피고에게 부동산 및 현금을 증여했고 그로 인해 원고 윤모씨에게 4억7000여만원, 윤씨의 자녀들에게 각각 3억1000여만원의 유류분 부족액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피고가 각 수증재산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판부는 "고인의 사망 당시 신탁재산을 생전증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 사건 신탁재산은 수탁인인 A은행에 이전돼 대내외적인 소유권이 수탁자인 A은행에 있었으므로 신탁재산이 고인의 적극적 상속재산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법 1114조와 대법원 판례등에 따르면 생전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이 되지만 은행처럼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개시 전 1년간 이뤄진 것만 포함된다. 다만 제3자가 해당 재산을 받아 특정 상속인에게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에 포함된다.
재판부는 "신탁재산 수탁자로서의 이전은 수탁자가 위탁자에 대가를 지급한 바 없다는 점에서 성질상 무상이전에 해당된다"며 "유류분 산정의 기초로 산입되는 증여는 무상처분을 포함하는 의미로 폭넓게 해석되므로 증여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 신탁계약 및 그에 따른 소유권 이전은 상속이 개시된 2017년 11월 11일보다 1년전에 이뤄졌고 수탁자인 A은행이 이 사건 신탁계약으로 인해 유류분 부족액이 발생하리라는 점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민법 제1114조에 따라 산입될 증여에 해당하지 않아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최근 유류분 관련 민법 1112조·1113조·1118조가 위헌법률심판에 제청된데다, 법원이 유언대용 신탁상품은 유류분 대상 재산에서 제외하면서 상속 유류분과 관련한 법 개정 움직임이 감지되는 상황이다.
민법 1112조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2분의1로,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1로 규정하고 있다. 유류분의 산정과 준용규정은 같은 법 1113조와 1118조에 명시돼있다.
이미호 기자 be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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