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기자메모]대통령·장·차관 급여 삭감, 나쁜 선택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0.3.19.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움직임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제도이니 나쁘게만 보지 말아달라.” 코로나19 경제대책 1호라 할 수 있는 ‘착한 임대인’ 세제지원 정책에 대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착한 사람을 이롭게 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취지로 만든 정책은 전에도 본 적 있다. 2018년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 목적으로 도입한 ‘제로페이’는 ‘착한 소비자’ 지원 정책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분담한다며 대통령과 장·차관 급여를 4개월간 30%씩 삭감한다는 ‘착한 공무원’ 캠페인이 등장했다. 국회의원들도 세비 반환으로 동참하고 1급 공무원들에게 확산시킬 기세이다. (관련기사) 결론부터 말하면 셋 다 ‘나쁜’ 선택들이다.

자신감 없는 정부가 ‘착한 정책’을 추진한다. ‘착한 정책’들은 정부의 돈은 별로 쓰지 않는다. ‘소득공제 확대’나 ‘조세감면’처럼 애초에 얼마나 지출이 될지 추산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집행이 쉬운 세제지원이다. 정책이 실패해도 큰 탈이 없고 세수를 확보하기까지 한다. 책임도 전가한다.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카드회사가 카드수수료율을 결정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대신,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는 대신 효과 불분명한 ‘착한 정책’을 던져놓은 것이다. 민간의 권력구조에 개입했다간 ‘사회주의 정부’란 비판을 받는다는 두려움마저 묻어난다. 마스크 수급에 늦게 뛰어든 것도 이 관행적 두려움 때문이다.

대통령과 장·차관의 급여 삭감이 가장 나쁜 선택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거꾸로, 관에서 민으로, 고통분담을 명목으로 한 임금삭감 경쟁을 확산시킬 여지가 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기업은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비정규직이 확산됐으며, 2009년 금융위기 때 공기업은 신입사원의 임금을 20% 깎았다. 고통분담을 명분으로 고통을 아래로 흘려보냈다. 정부 수장들이 나서서 고통분담을 부르짖으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하고 싶은 기업들에게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노동자들은 무급휴직을 강요받으며 생계난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돈을 들여 기업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크게 늘린 것도 아니고 실업급여의 대상을 확장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착한 공무원’ 캠페인은 이 문제 해결에 자신이 없는 정부의 속내를 보여준다. 재정을 통한 대응 요구에 “대통령이 급여를 반납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데”란 용도로 활용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