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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연합시론] 도넘은 인권유린 '디지털 성범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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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 나라가 고통을 겪는 가운데 불거진 '모바일 메신저 성범죄'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경찰청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자행된 성 착취 범죄를 수사해 124명을 검거했다. '박사'란 닉네임을 쓰는 20대 청년 조모 씨는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게 한 뒤 유포까지 해 억대의 범죄수익을 챙겼다가 구속됐다. 이처럼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은 'n번방'을 시작으로 몇 달 만에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이번 사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n번방 운영자인 닉네임 '갓갓'은 아직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여성단체들이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개의 참가자들을 파악한 결과, 무려 26만 명에 달한다니 충격적이면서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대화방에 참여했을지 모르지만, 성범죄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성범죄는 여간해선 회복과 치유가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한다. 특히 디지털 성 착취물은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한 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다. 대화방 운영자뿐 아니라 참가자들에 대한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인 수백만 명이 참여했고 청원자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온라인 성범죄는 웬만해선 가담자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대규모 집단성폭력 형태로 번지기 마련이다.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 참여자들은 익명성이라는 가면에 기대어 '재미 삼아' 입장했겠지만, 피해자 인생을 망가뜨리는 흉악범죄에 깊이 발을 담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박사방'을 운영한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은 살인이나 성범죄, 약취·유인, 강도, 폭력 등 사건이 발생하면 요건을 따져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번 사건의 파장을 감안하고 추가 피해와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선 범행을 주도한 인물들의 신상정보 공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 착취물 범죄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일베, 소라넷, 양진호 웹하드 등에서 비슷한 범죄가 수없이 자행됐지만,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도 이런 사태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불법 영상물을 단순 열람하는 행위 등을 포함해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처벌 규정을 세밀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성인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물의 경우 촬영이나 유포를 하지 않고 소지만 한 경우는 처벌조항이 없는 실정이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소지한 행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선고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국회나 수사기관, 법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독버섯을 없애려면 자랄 수 있는 여건 자체를 만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성 착취물 제작·유포 행위에 대한 엄벌뿐 아니라 은밀하게 음란물을 찾는 '관음증' 또한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요즘처럼 첨단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선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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