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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오후 한 詩] 이디오피아식 인사/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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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이 나무에 걸렸다.

우리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배드민턴 채를 내려놓고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디오피아에서 온 셔틀콕인데 지금 나무에 꼼짝없이 걸려 버렸다.

왜 날마다 배드민턴을 쳤는지 모르겠다.

왜 저녁을 먹기 전에 언제나 그랬는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잔뜩 주고받으며 뛰어다녔는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우리는 끝없이 달리는 것 같았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도망치는 것 같았다.

하늘로 셔틀콕이 날아가도 모르고

이디오피아까지 그것이 날아갔다가 돌아와도

똑바로 날지 못하고 나무에 걸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네가 나무를 여기 불러 세웠니 난 아냐 따지면서

그동안 거래했던 배드민턴 채들을 느닷없이 호출해 대기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배우느라고 우리는 노년이 와도 몰랐다.

남들은 금방 배우는 것을 배우지 못해 허둥대고 질질 끌고

다른 사람의 배드민턴 채를 뺏기만 했다.

다정한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훌륭한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끼리 배드민턴을 치고

얼마나 멋지게 배드민턴과 결합하는지

그들이 무슨 방법으로 배드민턴을 끝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툰 솜씨로 우리는 왜 날마다 배드민턴을 쳤는지 모르겠다.

셔틀콕이 똑딱거리며 계속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피해

배드민턴 채를 흔들어 대며 우리는 서로를 탓하고 내리쳤다.

네가 나무를 여기 불러 세웠니 난 아냐 따지면서

물러설 줄 모르고 나무 밑을 빙빙 돌았다.

셔틀콕이 떨어지면 줍기 위해 벌써 허리를 구부렸는데

그것은 이디오피아에서 반가울 때 하는 의례적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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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다정해 보인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 점심에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이고, 저녁에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아침에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무척 건강해 보인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은 꼭 배드민턴을 치는 다른 사람과 함께 배드민턴을 친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고독하지가 않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치느라 너무 바빠 슬플 겨를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훌륭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배드민턴을 치고 싶다. 나도 이 봄날 누군가와 깔깔거리며 멋지게 배드민턴을 치고 싶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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