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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사설] 경제 기저질환 놔두고 응급처치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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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제 충격이 본격화되자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중심의 비상 대응 체제를 출범시키고 위기 대응 조치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에 대한 '50조원 금융 지원'이 발표됐고, 증시·채권안정기금 등의 대책도 추진되고 있다. 여권이 요구하는 전 국민 대상 '재난기본소득'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취약 계층이 벼랑에 몰리지 않도록 정부는 더욱 적극적 자세로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정부 조치들은 급한 불을 끄는 응급 조치에만 치우쳐 본질적인 위기 대응에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충격이 닥쳐오기 전부터 한국 경제는 심각한 기저(基底)질환을 겪고 있었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이 위축됐으며 일자리 창출 능력과 기업 역동성이 쪼그라들었다. 만성적 저성장 조짐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코로나 태풍이 덮쳐왔다. 경기 호조를 누리다 위기를 맞은 미국·유럽 등에 비해 우리는 충격이 훨씬 크고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경제가 좋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사실 호도일 뿐 아니라 중대한 현실 진단 오류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경제성장률은 OECD 36국 중 34위에 그쳤다. 2017년 16위에서 18계단이나 주저앉으며 57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도 뒤졌다. 산업생산은 19년 만의 최악, 제조업 생산 능력은 48년 만의 최대 하락을 기록했으며 3년간 118만개의 풀타임 일자리가 사라졌다. 수출이 15개월 연속 감소하고, 기업 투자는 해외 탈출 러시를 이뤘다. 자영업 서민 경제가 싸늘하게 식었으며 국가 재정은 급속도로 부실화됐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세계경제가 호조였던 문재인 정부 전반기, 한국 경제는 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규제·노동 개혁 등의 구조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미래 신사업의 기반을 마련할 호기였지만 반기업·반시장 정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기회를 허비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과도한 주 52시간제 등 다른 나라와 거꾸로 가는 역주행 정책들이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세금 퍼부어 수치를 분식하는 눈가림 경제 운용을 이어왔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여건에서 위기를 맞게 됐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 앞에서 정부는 과감한 재정 투입과 금융 지원을 통해 경제의 약한 고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줘야 한다. 그와 동시에 경제 기저질환을 치유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동반되지 않으면 위기 탈출은 불가능하다. 정책 방향을 친기업·친시장의 활성화 기조로 바꿔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 구조를 수술해 위기에서 버틸 기초체력을 만들어줘야 한다. 경제 회생을 주도할 기업과 주력 산업들이 허약해지면 감염병 종식 후의 회복 국면에서 경쟁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돈 풀고 유동성 지원하는 응급처방과 함께 정책 대전환을 통해 산업 복원력을 확보해 놓지 못하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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