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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태평로] 자꾸만 걱정하게 되는 '모자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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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난 핑계 대면서 '기본소득' 개념 돈뿌리기 추진… '소주성' 이어 경제 파괴범 될 수도

제대로 논의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조선일보

이진석 사회정책부장


이럴 때 관료들은 "모자를 씌운다"고 한다. 낡은 정책을 새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을 때, 정책 방향을 뒤집을 때 쓰는 말이다.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사람들이 몰라보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재난 기본 소득'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기본 소득의 개념에 '재난'이라는 모자를 씌운 것처럼 보인다. 한 전직 관료는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기본 소득을 일단 시작해보려는 것이 뻔히 보인다"고 했다. 기본 소득은 AI(인공지능)가 일자리를 뺏어 가 대량 실업이 닥칠 것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검토해야 할 정책이긴 하다. 시내버스에 자동문이 설치되면서 안내양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일이 모두에게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로 할지, 누가 낼지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그런데도 이재명 지사 등은 굳이 기본 소득이라는 단어를 고집한다. 재난 지원금이라고 해도 될 텐데 재난 기본 소득이라고 한다. 이 지사는 취약 계층 선별 지원에도 반대한다. "재난 기본 소득은 반드시 모든 국민에게 같게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는 "한국의 경제 대책이 미국과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재난 기본 소득 도입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라고 했다. 판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른은 1000달러, 아이들에게는 500달러를 나눠 줄 모양이다. 홍콩, 마카오 등도 도입했다. 일본도 2009년 금융 위기 당시 현금을 나눠준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 소득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이 지사는 "부자는 죄인이 아니다"라면서 중산층 이상에게도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재난 기본 소득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경제 정책이라서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줘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과감한 재난 기본 소득으로 이 경제 위기를 돌파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러다 정말 모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걱정스러운 '모자'가 하나 더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 '기본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모자를 쓰면 어떻게 되나. 재난 기본 소득이 실제로 도입되고,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 정부 어딘가에서는 "코로나 극복에 유용했으니 이번에는 '기본 소득 주도 성장'을 해보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나서게 만든 민주노총은 공교롭게도 3년 전과 똑같은 말을 한다.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지원해야 한다면서 "30대 재벌이 쌓아놓은 사내 유보금이 950조원이다. 재벌 곳간 열어 당장 10% 정도만 출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3년 전에는 "30대 재벌 사내 유보금 중에 8%면 최저 시급 1만원 해결된다"고 했다. 방방곡곡에 '재벌 곳간 열어서 지금 당장 시급 1만원'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한 정당은 이런 문구를 내다 걸었다. '최저임금 1만원 시행하면 경제가 살아납니다.'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대폭 올렸지만 소득 주도 성장은커녕 경제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코로나가 없었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1%대 추락을 겨우 면했다. 기본 소득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일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는 안 된다. 그걸 모르면 나라는 망하는 길로 간다.

[이진석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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