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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新중동천일야화] 이란 코로나 확산을 설명하는 세 키워드… 시아파, 미국 제재,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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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중심지 '곰(Qom)'서 확산 시작… 성직자·지도층 등 왕래 많아

美 제재로 중국과 가까워지고, 총선으로 바이러스 크게 퍼져

체제 비판 여론 커질 수도… 의료 인프라 취약한 주변국은 초긴장

조선일보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올 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피살로 미국과 전면전 직전까지 갔던 이란 국민은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인 격추로 충격을 받았었다. 이를 채 추스르기도 전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졌다. 이란 보건부 대변인은 한 시간에 50명씩 감염되고, 10분마다 1명씩 사망한다며 위중함을 알리고 있다. 숙적 미국보다 바이러스가 더 두려울지 모른다.

배경을 살피면 유럽과 묘하게 대조된다. 유럽의 급속한 확산 추세는 '하나 된 유럽'이라는 오랜 로망, 그리고 자유로운 문화와 맞물렸다. 솅겐조약으로 유럽인들은 이동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축제는 어디서든 열렸고 바·카페·클럽에서 함께 어울리는 문화를 타고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반면 이란은 엄격한 신정주의 국가다. 정부는 언제든 국민을 통제할 힘과 이념과 도구를 갖고 있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제재와 주요 걸프 왕국들과의 갈등 때문에 역내 이동도 자유롭지 않다.

시아파 중심지가 바이러스 공급처로

이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는 종교(시아파) 요인이다. 키워드는 '곰(Qom)'이다. 이란의 첫 확진자가 나온 곳이다. 이란 정부가 중국발 항공편을 차단하자 제3국을 경유해 중국에 다녀온 이란 사업가가 첫 전파자였다. 곰은 이슬람의 양대 종파 중 하나인 시아파의 중심지로, 신학 연구 및 교육의 거점이다. 체제 정통성의 뿌리가 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헤란과 멀지 않다. 이란 권부의 핵심 성직자들과 지도층 인사들 역시 곰을 오가며 교류한다. 부통령을 비롯, 국회의원 23명, 최고지도자 자문역, 국정조정위원회 성직자 등 체제 엘리트들이 대거 감염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곰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3월 5일 이란 31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제야 이란 정부가 차단에 나섰으나 이미 손쓰기 어려울 만큼 퍼져버렸다. 종교 중심지가 바이러스 공급처가 된 셈이다.

둘째는 국제정치 요인이다. 키워드는 '제재'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이란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15년 극적인 핵합의 타결로 오랜 제재의 압박에서 벗어나 개방을 통한 변화를 시도할 즈음이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란은 중국에 다시 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지원만으로는 미국의 제재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제는 악화일로였다. 석유 판로는 차단되고, 외환 거래도 막혀버렸다. 의약품과 의료 장비 도입도 어려워졌다. 바이러스는 제재로 인해 흔들거리는 이란 경제의 취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경제난 때문에 방역에 머뭇거리다 사태가 악화되었다는 평가다. 제재 국면에서 엄격한 차단 조치에 나선다는 것은 저항 경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최대 압박'에 맞선 '최대 저항'이 '최대 위기'가 된 이유다. 이란은 국제통화기금에 50억달러 신속금융제도(RFI)를 요청하는 등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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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국내 정치다. 키워드는 '선거'다. 2월 21일 이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우려가 없지 않았다. 선거 이틀 전 첫 감염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었고, 곰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 확산을 판단하기에는 모호한 시점이었다. 예정대로 선거를 실시했다. 이란 보수파에 이번 선거는 중요했다. 일방적으로 파기당한 핵합의와 경제난의 책임을 물어 로하니 대통령 등 중도·개혁파 현 정부를 누르고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전초전이었다. 보수파는 압승했다. 공교롭게도 바이러스 확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점과 선거가 맞물렸다. 이란 선거 문화는 독특하다. 투표장에서 기표하는 데 오래 걸리고 이 자리에 유권자들이 밀집해서 토론하며 어울리기도 한다. 선거로 인해 감염이 빨라졌다는 설의 배경이다.

정권까지 뒤흔드는 바이러스

시아파, 제재 그리고 선거, 이 세 키워드는 본래 이란 정치의 독특성을 설명하는 요소였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덧대져 독특한 확산 양상을 나타내는 셈이다. 곰에서 시작한 확산은 국경을 넘고 있다. 시아파 성지순례 이후 인근 국가의 확진 환자가 폭증하는 양상이다. 3월 중순 약 21국에서 이란발 전파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라크를 비롯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주변국의 우려가 만만찮다. 이란과 가까운 중앙아시아 국가도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나라가 많아 우려가 크다. 이란이 추구해 온 역내 영향력에 변수가 생긴 셈이다.

이란 국민의 민심이 주목된다. 그동안 다수의 이란 국민은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적어도 체제 자체만큼은 지지해왔다. 이슬람 혁명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충돌로 인한 안보 위기,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로 힘들어하던 차에 전염병 확산 위기는 치명적이다. 민심을 뒤흔들 만한 위기다. 여전히 반미 구호가 압도하고 있지만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 판단 오류, 권력 싸움을 한탄하는 소리도 스멀스멀 들려온다. 늘어나는 사망자 수와 함께 체제 비판 목소리도 번져나갈지 모른다.

역설적 상상도 가능하다. 이란이 미국과 다시 마주 앉을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 원성이 커지고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 이르면 이란 지도부는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아직은 비현실적인 그림이지만 바이러스라는 인류 공동의 적 앞에 전통적 숙적이 손잡고 함께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염원은 아닐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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