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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온 국민이 분노… "26만명이 여성 성착취 채팅방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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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신상공개 靑청원 역대 최다

주범, 텔레그램 채팅방 수십개 운영… 방 하나에 최대 수만명 참여

일부 여성단체 대규모 집회 추진

지금까지 124명 검거, 18명 구속

미성년자 등의 성(性) 착취 장면이 담긴 영상을 소셜미디어로 유포한 이른바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성범죄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운영자들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에는 '텔레그램 성 착취 영상물 게시자 등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지난 18일 올라왔는데, 22일 오후 11시 현재 206만명이 서명했다. 청와대 답변을 받기 위해 1개월 내에 서명받아야 하는 서명인 수 요건(20만명)을 불과 나흘 만에 10배 초과 달성한 것이자, 역대 최다 서명이다.

'박사방 사건'은 텔레그램상에서 '박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조모씨가 여성들을 협박해 촬영한 음란물을 채팅방에서 돈을 받고 유포한 사건이다. 피해 여성 74명 가운데 16명은 중학생 등 미성년자였다. 돈을 미끼로 피해자를 꼬드겨 일단 나체 사진을 받은 뒤, 관공서 전산망을 통해 확보한 피해자 신상 정보를 확인하고 협박하는 수법을 썼다.

조씨가 촬영·유포한 영상은 엽기적이고 가학적인 성 착취물이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 여성들이 공중화장실에서 나체 '셀카'를 찍는 장면 등이었다. 피해 여성들을 '노예'라고 부르면서, 이들에게 스스로의 몸에 '노예' 등의 글씨를 칼로 새기게 했다.

이런 영상을 보는 채팅방은 회원이 낸 금액에 따라 4단계로 운영됐다. 입장료는 맛보기방은 무료이고, 1단계 방부터는 20만원, 70만원(2단계), 150만원(3단계)을 각각 받았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노출 수위와 가학성이 더 커졌다.

'직원'의 정체는 회원들이었다. 조씨는 영상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텔레그램으로 피해 여성 성폭행과 촬영을 지시했고, 이를 이행하면 유료 회원 자격을 줬다.

이런 채팅방을 조씨는 2018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수십 개 개설하고 폐쇄했다. 경찰 관계자는 "방 하나당 수백~수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성 단체에서는 "텔레그램으로 성 착취 영상을 돌려본 이가 26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公憤)이 일면서, 인터넷에는 조모씨에 대한 미확인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천안 거주 9수생 조○○씨' '키 170㎝ 내외, 몸무게 80㎏ 이상' 등이다. 경찰은 "인터넷에 올라온 조씨 정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며 "검거된 박사의 공범 13명조차 조씨의 신상이나 얼굴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0대 중반 미혼 남성으로 대학 졸업 후 특정한 직업이 없는 상태다.

여성들의 분노가 더 크다. 일부 여성 커뮤니티는 오는 4월 이번 사건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기획했다가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대규모 여성 집회는 2018년 서울 대학로에서 열렸던 '혜화역 여성 집회' 이후 처음이다. 당시 남성 누드모델의 몸을 휴대전화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여성 모델을 경찰이 조기(早期) 검거하자, 여성들이 "하루에 수백 건 터지는 남성 몰카 범죄는 왜 해결하지 못하느냐"며 시위를 벌였다. 2016년 5월 벌어진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 사건' 2주기와 맞물려 수만 명이 몰리는 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다. 경찰은 작년 9월부터 텔레그램상 불법 음란물 유포를 집중 수사해, 지난 20일까지 운영자와 회원 등 12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8명을 구속했다.


[주범 얼굴·신상 공개할 듯… 회원들도 처벌하기로]


24일엔 이른바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 주범 조모씨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24일 열리는 조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서 경찰관 위원 3명 전원이 신상공개에 찬성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경찰관 3명과 변호사·교수 등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 총 7명 가운데 과반이 찬성하면 범죄자 신상이 대중에 공개된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감안할 때 외부위원 일부도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박사방 회원들도 최대한 찾아내 처벌할 계획이다. 이들 역시 공범이기 때문이다. 조씨는 '불법 음란물을 직접 유포했음'을 인증하는 이들에게만 유료 회원 자격을 줬다. 불법 음란물 유포도 현행법상 범죄다.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경찰은 현재 조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디지털 복원 중이다. 다만 '박사방 회원'들을 공범으로 보더라도 신상까지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현행법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박사방 회원'들에게까지 적용하긴 어렵다고 본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아동 성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고 신상공개 범위도 넓다. 2013년 미국의 한 방송사 사장이 아동 음란물을 내려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00년을 선고받았다. 아동 음란물을 소지만 해도 5~20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이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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