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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온라인 개강' 일주일… 혼란 속 캠퍼스는 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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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코로나19가 앞당긴 미래 대학가 '온라인 강의' 자리 잡을까

난데없이 국내 대학의 온라인 강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이 대면 수업을 포기하고 비대면 수업으로 옮겨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장 온라인 영상의 화질이나 음성 등 기술적인 문제부터 강의의 질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6일 국내 4년제 대학 193곳 중 175곳은 '온라인'으로 개강했다. 영상제작업체를 서둘러 섭외해 온라인 강의를 찍은 대학도 있고, 교수가 직접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나선 경우도 있다. 대학마다, 교수마다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첫 주 성적표는 신통치 못했다.

조선일보

지난 16일 개강한 대학의 온라인 강의의 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는 대학들의 모습. /강원대·동국대·디지스트·연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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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첫 주 "서버 터지고 접속 끊기고…"

가장 먼저 서버가 터졌다. 고려대와 국민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수도권의 주요 대학은 16일 오전 접속자가 몰려 수강 페이지 접근이 막혔다. 이는 사실 예견된 사태였다. 서울 한 사립대 A(45) 교수는 "학년을 분산해 하는 수강신청 때도 버벅이는 게 대학의 서버"라며 "더 큰 용량의 동영상을 일제히 재생하려고 시도하는데 버텨낼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기껏 재생한 동영상 강의는 수준이 들쑥날쑥했다. 가장 먼저 화질 문제가 지적됐다. 대학생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동안 완전히 초점이 빗나간 동영상 강의 캡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사진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노(老)교수가 칠판에 열심히 판서를 한 모습이 찍혀 있다. 수도권 사립대 시설팀에 근무하는 B(38)씨는 "서버용량의 한계 때문에 동영상 강의 파일의 크기를 줄여야 해 부득이하게 화질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일부 대학은 모자란 시간과 예산 때문에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교수들에게 각자 소형 웹캠을 사주는 데 그쳤다"며 "그마저도 2억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교수가 직접 노트북에 웹캠을 설치하고 동영상 강의를 촬영하라는 의미다. 이 대학은 그나마 동영상 강의 촬영 등을 도울 조교 수를 늘려 교수들의 고충을 해결했지만, 아예 손을 놓은 대학도 많다.

새로운 시도에 교수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A 교수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강의를 시도했는데 안정적이라는 업체의 설명과 달리 접속이 끊기거나 음성이 물리는 등 어려움이 컸다"며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차라리 미리 동영상을 찍어두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A 교수는 실시간 강의 도중 접속이 끊긴 학생의 출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스럽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더니 카페에 몰린 대학생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종대에 재학 중인 김인섭(23)씨는 "수업이 중간에 끊기거나 버퍼링이 길어지면 답답하고 집중이 안 된다"며 "차라리 유튜브 등 스트리밍 전문 소셜미디어에 강의를 올려 준다면 공부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염을 막기 위해 다수가 모이는 강의실의 문을 닫았더니, 학생들이 오히려 카페로 모이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김씨는 "집에 무선인터넷이 없으면 인근 카페를 갈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거리 두기'라더니 삼삼오오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은 이전과 매한가지라 무슨 효과가 있나 싶었다"고 지적했다.

학습권을 중시한 학생은 온라인 강의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포스텍(포항공과대) 관계자는 "실험실습을 기대하고 이공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사이에서 온라인 강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며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 온라인 강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포스텍은 현재 자체적으로 구축한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MOOC) 시스템인 'MOOC-X'를 기반으로 학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가가 더욱 혼란을 겪는 것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비대면 수업을 '코로나19 종식 시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는 개강을 한 주 앞뒀던 지난 13일 온라인 강의를 무기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도 1학기 동안 비대면 수업으로 1학기를 운영할 방침이다. 이 대학들이 비대면 수업 무기한 시행을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학생 규모가 크지 않고, 온라인 강의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학내 문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 일각에선 혼란 불구 “혁신 계기 삼아야” 주장도

이처럼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보수적인 대학의 수업방식을 개선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강의의 질을 높이고 관련 규정을 적극적으로 개정해 새로운 대학 수업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종우 ㈔미래융합교육학회 이사장(신한대 교수)은 “코로나19로 인해 강요된 것은 사실이나 국내 대학 수업을 질적으로 끌어올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이사장은 지금 대학가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도 질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프라인 강의실의 모습을 그대로 이식한 데 그쳐 교육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와 문법이 다르다”며 “자료를 미리 배포하고 학생과 교수가 의견을 교환하면서 토론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거꾸로학습) 등 다양한 수업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단순히 영상만 올리거나 지금처럼 파워포인트에 음성만 입히는 방식으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교수가 적극적으로 학생과 소통하고 토론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도 당부했다. ▲온라인 강의 전 SNS를 통한 세부 안내 제공 ▲수업 전 온라인 강의 체험하기 ▲수업 전 강의 공지 ▲플립러닝 방식의 토론 수업 ▲수업 피드백 등을 강조했다.

실제 20여 년간 온라인 강의를 다뤄온 사이버대학에선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강의의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육효창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부총장은 “온라인 강의 하나를 만들기 위해 교수는 스토리보드를 대학과 논의해서 짜고, 수업과 관련한 각종 참고자료를 학생과 공유하며 준비해야 한다”며 “실시간 강의나 동영상 녹화도 교수의 선호가 아니라 전공과 과목의 특성에 맞는 방식을 택해야 함을 인식하고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학 수업에 대한 지나치게 구체적인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온라인 강의를 전체 수업의 20% 이하로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규제와 동영상 강의 재생시간이 25분을 넘어야 한다는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가에선 사이버대학이 등장하고, MOOC가 대세를 차지한 시점에 이 같은 규제를 대학에 적용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육 부총장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온라인 강의에 대한 요구는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제기됐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강의의 중요성과 기능이 드러났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인식 개선과 수요 확대가 더 이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교육부는 우선 올해 1학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온라인 강의 관련 규제를 해제했지만, 앞으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온라인 강의가 중점을 이루는 방식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사무처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낡은 규제를 없애고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근 미네르바스쿨 등 캠퍼스 없는 대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국내 대학도 온라인 강의의 경쟁력을 갖춘다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총협은 대학의 온라인 강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각 대학이 개별적으로 설치했던 서버를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관하고, 화상회의 프로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실시간·녹화 온라인 강좌 설루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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