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성 사회기획팀장 |
매년 3월엔 교육 담당 기자들을 괴롭히는 통계가 나온다. 2007년부터 교육부와 통계청이 조사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얘기다. 지난해엔 학교 3002곳, 학부모 8만명을 조사했다. 조사 규모만큼 언론에 배포하는 자료도 길다. 올해는 32장(A4)에 이른다.
분량 탓에 골치가 아픈 건 아니다. ‘구멍’이 많아서다. 정부가 발표하는 사교육비엔 초중고 학생의 절반(48.4%)이 이용하는 방과후학교 수강료가 제외된다. 공교육(학교)이 주관하는 거니 사교육비가 아니라는데, 독자가 수긍할지 모르겠다. 학원비와 마찬가지로 부모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니까. ‘수능·EBS 연계 출제’로 고교생에겐 교과서나 다름없는 EBS 교재비도 제외다. 공영방송이 파는 책이라 그렇단다. 연간 4400억원이 넘는다는 어학연수 비용도 빠진다.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도 문제다. 10일 발표된 지난해 초중고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32만1000원인데, 이 금액을 제목으로 건 기사엔 "믿을 수없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특히 사교육비 탓에 내 집 마련도 미뤄야 하는 ‘에듀 푸어’는 공감할 수 없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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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하지만 알맹이 없는 정부의 ‘설명’과 ‘분석’이야말로 골칫거리다. 1인당 사교육비, 사교육비 총규모(21조원)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한 올해 자료엔 ‘소득과 사교육비 관계 분석’이란 대목이 추가됐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머리를 맞대고 분석해보니 “평균소득이 높아져 사교육비가 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기자들에겐 ‘살림살이가 나아져 씀씀이가 커졌을 뿐 정부 탓은 아니다’는 변명으로 들렸다. 물론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팩트’와 맞지도 않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은 증가했지만, 사교육비는 늘지 않았다.
교육부는 초등학생 사교육비의 증가를 “예체능·취미·교양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늘었다”고 풀이했다. 당장 “의무교육의 실패에 대한 비난을 면하려고 부모에 책임을 돌렸다”(기회평등학부모연대)는 비판이 나왔다. 과목별로 보면 국·영·수 등 일반교과 사교육비의 증가폭(12.4%)이 예체능·취미·교양(10.8%)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기사에 담아야 할 해설은 장황한 교육부 자료가 아니라 관련 단체의 성명서에 있었다. “사교육 경감에 미온적이었던 문재인 정부가 초래한 참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자 “아전인수식 통계 해석에 근거한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게 증명된 것”(한국교총)이다. 설명회에서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매년 저희가 야단맞는 날”이라 했다. 공허한 ‘말 잔치’를 거두고 정책 실패, 정부 책임을 인정하면 국민의 분노가 이리 크진 않을 거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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