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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정리뉴스] 국회 청원 1호 ‘N번방 방지법’은 왜 졸속 논란에 휘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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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ReSET은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의 해결을 위해 헌신하는 단체로서 청원내용이 매우 축소되어 소극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된 데 큰 유감을 표한다.”

지난 9일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지원단체인 ‘프로젝트 리셋’이 낸 보도자료 일부다. 리셋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만들어진 1호 법안(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의 최초 청원인이 속해 있는 단체다. 법안은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리셋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법 개정”이라며 반발했다. 27개 여성단체로 이루어진 한국여성단체연합도 11일 “N번방 방지법은 졸속입법”이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청원에 서명한) 10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던 국회 청원 1호 법안은 왜 졸속 처리 논란에 휘말리게 된걸까.

경향신문

텔레그램 성범죄 방지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국민동의청원은 지난달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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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논란 왜나왔나

청원인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소위 ‘N번방’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단체방에서는 음란물에 여자연예인과 지인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나 불법촬영물이 수시로 유통 또는 판매됐다. 각 채널 구독자는 최소 수천명에 이른다. 한 단체방에서 얻은 영상이 다른 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음란물 사이트로 2,3차에 걸쳐 재유포되거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에 청원인이 제시한 요구사항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텔레그램 서버가 해외에 있는 탓에 성착취 영상 삭제나 경찰의 즉각적인 수사가 어렵다는 점에서 ‘경찰의 국제공조수사’를 요구했다. 두번째로는 피해자들이 처벌의 불확실성을 우려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에서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양형기준 재조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알려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디지털 성착취물의 한 유형에 불과한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데 그쳤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10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국회의원의 소개 없이도 국회의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1월 신설됐다. 법률 비전문가가 쓴 청원 취지를 살려 법안 형태로 가공하는 것은 소관 상임위 전문위원들의 역할이다. 국회의원들의 논의를 돕기 위해 자료 조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각 당 간사 의원들은 상임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기 전 심사자료를 토대로 안건과 일정을 조정한다..

해당 청원은 지난 11일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심사자료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자는 취지의 성폭력특례법 개정 발의안 4건과 청원을 병합했다. 3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회의에서도 딥페이크 처벌 규정만 논의됐다. 청원인 요구사항에 대한 언급도, 딥페이크 관련 법과 병합하는 이유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향신문

리셋 활동가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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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렇게 처리됐나

해당 청원을 심사한 권태현 법사위 전문위원은 현실적 한계를 이야기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청원과 딥페이크 처벌법의 관련성이 밀접하다고 볼순 없다”면서도 “국제수사공조나 수사기관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등은 국회 입법이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에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이 있는 법안을 찾아 병합처리하게 됐다”고 했다. “청원 취지를 살려 발의안을 새로 만들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20대 국회 회기 내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딥페이크 처벌 규정이라도 마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현실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입법자들의 의지다. 하지만 국회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은 ‘N번방 사건’이나 ‘딥페이크 영상’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못한 채 법안을 논의했다. 3일 법안심사에 참여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안 취지를 설명하며 “이것(딥페이크 영상)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저도 잘은 모른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딥페이크 영상을 ‘음란물’로 표현하거나 “기존 법률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지 않느냐”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법사위는 지난 4일 국회 청원을 본회의에 올리지 않고 대안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에 딥페이크 처벌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청원 취지가 반영됐다”는 이유다. 하지만 딥페이크 처벌 규정 신설만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N번방 유력 피의자는 검거됐지만 여성들을 협박하고 성착취물 제작과 성관계까지 강요하는 범죄는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피해자지원단체들은 기존 법과 제도가 디지털 성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가해자들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고발해도 애플리케이션(앱)은 물리적인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다. 기존 법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여러 갈래로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어떤 플랫폼이냐에 상관없이 디지털 성범죄를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완전히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하영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응위원회 활동가도 “형법상 협박죄가 존재하긴 하지만 실제 성착취물을 유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고를 하더라도 낮은 처벌을 받는다”며 “텔레그램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다. 이들이 있기에 성착취 피해자들의 피해가 가중되지만 공모자들에 대한 책임은 전혀 묻지 않는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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