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EU 연대' 벼랑에…내부국경 닫고 서로 수출규제까지

독일·프랑스부터 '나만 살자'…통합상징 솅겐조약·단일시장 위기

"EU 존망의 갈림길에" 위기론까지…중국, 균열 틈타 재빨리 세력확장 포석

17일 폴란드로 진입하려는 차량 행렬을 지켜보는 리투아니아 국경수비대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 때문에 유럽통합이 벼랑에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내부 국경마저 걸어 잠그고 자국 이기주의를 표방하면서 연대의식이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EU 회원국들은 17일(현지시간) 외국인들에게 외부 국경을 30일간 닫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 국경 단속에도 점점 열을 올리고 있다.

EU 형성의 토대가 된 조약으로, 비자나 여권 검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국경을 열어두도록 하는 솅겐조약은 사실상 무너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 집계에 따르면 솅겐조약 가입국 가운데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경통제에 들어간 국가는 19곳에 이른다.

유럽의 자유이동 지역은 유럽의 단일성 유지와 연대의 상징과도 같은 터라 이번 사태의 여파가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 유럽연합[연합뉴스TV 제공]

국경이 통제되는 데 따른 유럽통합 파열음은 벌써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 국경에서는 폴란드 출입국 당국인 화물차 운전사들의 건강상태, 서류를 검사하면서 물류 정체가 수십㎞까지 이어졌다.

폴란드를 통해서만 다른 EU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자국민 송환을 위해 항공·해상 구조작전을 벌였다.

재화, 서비스, 자본, 노동력을 아무 장벽 없이 오가도록 보장하는 'EU 단일시장'도 유럽통합의 또다른 상징으로서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완화할 의료장비 수송조차 국경통제 속에 수송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나아가 유럽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프랑스와 독일은 마스크와 같은 방호 의료장비의 수출을 금지해 EU 내에 장벽을 쌓기도 했다.

지난주에 이뤄진 이 수출규제는 EU 지도부의 만류로 완화되긴 했으나 유럽의 연대 의식을 심각하게 저해한 사건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탈리아처럼 코로나19로 중상을 입은 데다가 소외까지 당한 회원국들이 체감하는 메시지는 심상치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유럽 안보 컨설턴트인 스테파노 스테파니니는 WP 인터뷰에서 " 이번 사태가 EU에는 실제로 존망의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스테파니니는 "EU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관심을 충분히 가지지 않거나 난제에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EU가 왜 필요한지 공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 리투아니아에서 폴란드로 진입하려는 물류 차량이 길게 늘어선 모습.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개입은 유럽통합 위기를 부추기는 또 다른 변수로 주목된다.

중국은 정치·경제·자유 민주주의 가치의 공동체인 EU와 거의 모든 면에서 상충하는 권위주의 국가다.

최근 중국은 EU 국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던 이탈리아에 마스크, 호흡기 등 필수 의료장비를 실어날랐다.

EU 가입을 희망해온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EU 연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를 도울 곳은 중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이탈리아가 중국의 세력확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에 적극 가세하더라도 이번 사태 때문에 EU로서는 말릴 명분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강화된 유럽 내 국경통제와 보이지 않는 장벽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WP는 2015년 난민사태 때 유럽의 국경통제는 이주민들이 결국 감소해 풀렸으나 바이러스는 재유행이 가능한 만큼 위기돌파 시점이 뚜렷하지 않아 섣불리 완화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취약국을 지원하기는커녕 의료장비 수출규제를 가해 유럽통합 위기에 불을 지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jangj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