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취약계층 매출·소득 ‘0’ 직면
재계 “유통업체 의무휴일 완화를”
상의 “금리 내리고 추경 40조로”
소상공인연합 “부가세 5%로 낮춰야”
익명을 요청한 이 회사 대표 이모씨는 12일 “중소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무급휴가를 해야 하는 현실로 내몰리고 있다”며 “중소기업 경영자끼리 우리는 ‘부도 확진자’라는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무급휴가는 소규모 회사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도 무급휴직을 시행 중이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도 개항 40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많은 입점업체와 직원들도 휴업 상태가 됐다. 극장, 영화관, 음식점은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다. 코로나19에 초토화된 기업과 종사자들이 ‘매출 제로(0), 소득 제로(0)’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서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2일 추가경정예산의 파격적 확대, 기준금리 인하, 대대적 규제완화, 임시공휴일 지정 등 전방위적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추경 규모와 관련,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9일 “11조7000억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2% 수준으로, (코로나19로 하락이 예상되는) 1%의 성장을 끌어올리려면 약 40조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 “국회는 현 상황이 비상시국임을 감안해 추경예산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켜야 하고, 정부 역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재계에선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규제완화만 해도 현장 경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는 의무휴업(현행 월 2회) 및 영업금지(0시~오전 10시) 시간대의 온라인 배송이라도 허용해 주길 호소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등 노동규제의 한시적 완화도 필요한 실정이다. 대한상의가 소개한 사례로, 전자기기 제조업체 B사는 확진자 발생으로 다수 근로자가 자가격리 중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C사 역시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면서 ‘가족돌봄휴가’를 쓰는 직원이 많아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 하지만 주 52시간제에 발목이 잡혀 조업 정상화가 어렵다. 상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 등을 건의했다.
중소기업 경영자 모이면 “우리는 부도 확진자” 씁쓸한 농담
항공업계는 미국과 중국, EU처럼 ‘사업용 항공기에 대한 취득세·재산세 면제’를, 건설업계는 공사 기간 연장 및 간접비 인하를 각각 요청했다. 또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정유·화학 업계에선 확진자 발생 시 공장 전면 중지 대신 조정실 같은 필수 가동시설의 운영이 가능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했다.
재계는 정부의 금융지원책이 현장에선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포장용 박스를 제작하는 소상공인 D씨의 경우 지난해보다 매출이 80%가량 줄어 최근 소상공인 지원 창구를 찾았지만 대출 심사에만 최대 2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는 통보에 절망하고 있다. 지역 신용보증재단 창구에서 개인보증을 요구하거나 대출한도 초과 등을 이유로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정책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0일까지 11만988건, 5조2392억원이 접수됐다. 하지만 이 기간 지원 규모는 1만217건, 지원 금액은 4667억원으로 약 9%에 그쳤다.
자영업자 최대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임대료·인건비는 다 나가는데 월급도 못 줄 판으로 그야말로 아사 직전”이라면서 “현행 10%인 부가세를 올해 상반기만이라도 5%로 인하해 소상공인의 과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이 밖에도 ▶월 150만~200만원의 소상공인 긴급 구호생계비 지원 ▶기존 대출의 부담 완화 ▶5인 미만 소상공인을 위한 고용유지 지원책 등을 요구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정부는 미국의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보다 선제적으로 기업과 경제적 약자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곽재민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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